“세종대왕 초정행궁서 훈민정음 정리했다”
“세종대왕 초정행궁서 훈민정음 정리했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20.11.17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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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문화원 역사콘서트서 조혁연 충북대교수 발제
“집현전 학자들 훈민정음 반대 … 극비 프로젝트 진행”
이세열 소장 “3차 초정행차는 백성 피해 우려 거부”
강전섭 원장 “지역 문화자산 활용 콘텐츠 개발 필요”

세종대왕이 두 차례 머물다간 초정행궁에서 훈민정음을 정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훈민정음 창제에 집현전 학자들은 참여하지 않은 왕실 극비 프로젝트였다는 분석이다.

청주문화원(원장 강전섭)이 17일 청주 향교 명륜당에서 개최한 `청주역사바로알기 - 공연과 이야기가 있는 역사콘서트'에서 주제발제를 맡은 조혁연 충북대학교 교수는 “세종이 초정행차를 하기 1년 전에 훈민정음이 만들어졌고, 초정에서 이를 정리하는 작업을 했을 것”이라며 “이는 초정행차에 앞서 최만리가 올린 상소문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만리의 상소문은 당시 집현전 학자들을 대표해 올린 것이란 점에서 한글창제에 집현전 학자들은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세종실록 26년 2월 20일 한글창제에 반대하는 집현전 학자를 옥에 가두고 이튿날 석방하라는 세종의 명이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또 “대군들이 풀지 못한 것을 공주가 풀었다는 기록을 통해 훈민정음 창제 작업이 왕실 가족들의 비밀 프로젝트로 진행되었다”며 “이기문 박사는 `국어 표기법의 역사적 연구'를 통해 생전에 훈민정음은 한문을 완전히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문과 상보적인 것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세열 직지디제라티연구소장은 `세종, 세조의 초정행차 일정 및 행궁'주제발표에서 “세종대왕의 3차 초정행차 계획이 건의되었지만 세종은 백성들에게 피해가 크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또 “세종이 초정에 머문 기간이 117일서 123일까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면서 “이는 조선시대의 음력이 지금과 다르고, 2차 행차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는 탓이다. 세종이 초정에 머문 기간은 120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초정행궁터에 대해서는 “주왕리와 초정리를 두고 행궁터라는 주장이 있었지만 1912년 토지대장에 초정원탕 부근이 창덕궁 땅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초정리에 행궁이 있었을 것”이라며 “행궁의 규모도 세종의 지시에 따라 소규모고, 지붕도 기와가 아닌 초가지붕의 형태여서 와편 등의 유구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강전섭 원장은 “세종대왕 축제를 개최하면서 역사적 인물을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 향후 심도있는 역사콘서트를 개최해 지역문화 콘텐츠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연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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