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 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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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5.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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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사보다는 경찰이 좋다
한 덕 현 <편집국장>

나이가 많은 분들에게 지금도 경찰은 주재소와 순사로 연상된다. 시골의 요충지에 주로 목조건물로 자리잡았던 주재소는 그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여기에 종사하는 순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일제의 강압과 폭정이 두 단어에 고스란히 각인돼 전달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어린아이가 울 때 "저기 순사 온다!"로 얼렀겠는가. 한때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야인시대'의 주인공은 물론 김두한이지만, 그 인기의 2등공신은 그를 끈질기게 따라 다니며 괴롭힌 종로서 고등계 미와형사다. 미와의 극중 이미지가 과거 순사의 실체를 어찌나 실감나게 했던지 드라마가 끝난지 4, 5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이처럼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던 순사 역으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접근돼 숱한 얘기를 만들어 낸데는 이유가 있다. 순사의 활동무대는 이른바 민생 현장이다. 그들이 비록 못된 짓을 다하며 갖은 해코지를 일삼았을 망정 삶의 최일선에서 사람들과 부딪치다보니 한편으론 상대에게 마지못한 감정을 갖게 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지고 볶고 하다보면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드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나는 경찰의 이미지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본다. 과거 순사처럼 못된 짓을 한다는 게 아니라, 경찰의 일상 업무가 바로 민생현장과 직결되다보니 사람들은 경찰에 대해 버거워하면서도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 운전자가 교통딱지를 뗄때나, 취객이 파출소에서 호기를 부릴 때도 항상 옆에 있는 것은 경찰이다. 언론사 기자들도 유독 경찰과는 형님 동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러한 경찰이 간혹 독직 등 무슨 사건에 연루되기라도 하면 이미지는 한순간에 돌변한다. 사람들에게 살갑게 느껴지던 감정도 황당하게 변질돼 여론화되기 일쑤다.

예를 들어 이렇다. 경찰은 차원이 낮고 때문에 아직도 멀었다는 식이다.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놓고 대립할 때도 그 저변의 논리는 바로 이런 것이다. 경찰 스스로 입에 올리는 '경찰은 검찰의 밥이다'라는 자조는 꼭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이 독점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일반인들도 경찰에 대해 상대적 격하(格下)를 의식하는데, 이는 과거 경찰의 업보다. 만약 이것이 대한민국 경찰의 숙명이라면 경찰의 독립은 이를 깨지 않는 한 요원할 수밖에 없다. 경찰이 고시를 패스한 우수한 인력을 영입하고 끊임없이 자체 인력의 역량배가에 힘쓴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수사권을 달라며 검찰과 맞짱을 뜰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나. 이런 상황에서 김승연 한화그룹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수사하던 남대문경찰서 간부들이 상대측 관계자를 비밀리에 만나고, 또 사건의 은폐와 축소를 기도했다는 의혹은 참으로 국민들을 안타깝게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경찰의 이미지는 다시 일제시대의 순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솔직히 여론은 이미 사실로 몰아 가는 추세다. 그만큼 국민들의 실망감이 큰 것이다. 자칫하면 경찰 최초로 재벌총수를 구속했다는 긍지가 단 며칠만에 희대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 역사적 고비때마다 경찰은 항상 그 현장에 있거나 그곳을 지켰다. 경찰 만큼 온 몸을 던진 경우도 없었고, 경찰만큼 비난을 받은 집단도 없다. 그 와중에서 가장 경찰을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축소와 은폐라는 고질적 이미지다. 정인숙 사건에서도 그랬고, 박종철 사건때도 그랬다. 때문에 경찰의 궁극적인 정체성은 바로 이를 극복하는데서부터 회복돼야 하고 그래야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김승연 사건으로 경찰은 다시 축소와 은폐의 시비에 휘말렸다. 과연 경찰이 이의 질곡을 어떻게 벗어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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