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당한 왕자귀나무
너무나 당당한 왕자귀나무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20.07.2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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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도로가에 심겨진 자귀나무 꽃이 어느새 하나 둘 떨어져 간다. 자귀나무 잎이 흐드러지게 피면 아주 어렸을 적 일이 생각난다.

학교 다녀오자마자 외양간에 매인 소를 몰고 나가 풀 뜯기는 것이 어린아이의 일과 중의 하나였다. 길가에 소가 먹기 좋은 풀이 많은 곳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아차! 방심하는 순간 남의 밭 콩을 한 움큼 뜯어 먹기 일쑤, 남의 논의 벼를 많이 뜯어 먹는 날에는 꾸지람 듣는 날이다. 그래도 딴 짓(?)하는 소고삐를 잡아당기면 그런대로 말을 잘 듣는다. 그리고 어둠이 짙어지면 소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지기 마련인데 자귀나무를 만나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귀나무 잎을 먹기 정신이 없다. 보통 잡아당겨서는 따라오려 하지 않는다. 채찍을 휘두르고 힘을 써 잡아당겨야 따라온다. 아무튼 소가 제일(?) 좋아하는 새싹이다. 정말 `소쌀밥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귀나무는 콩과의 소교목으로 농기구의 일종인 자귀의 자루를 만드는데 썼다고 자귀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마주난 작은 잎이 서로 붙는다. 이는 수분손실을 줄이기 위한 수면운동이다. 이 때문에 합환수(合歡樹)라고도 하며 겨울이 되면 열매 깍지 흔들리는 소리 때문에 여인의 혀 같은 나무라는 뜻으로 `여설수(女舌樹)'라고도 하였다.

그와 반대로 `정다운 소리를 들려 주는 나무'라고 유정수(有情樹)라고도 하였으니 같은 소리도 듣는 이의 기분에 따라 다른 소리로 들리는 것은 옛날 사람들도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런 자귀나무 중에 잎이 아주 큰 왕자귀나무가 있다. 잎이 자귀나무보다 매우 크고 꽃이 흰색인 것이 특징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목포 유달산에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던 것이 남해 일부에서 아주 드물게 발견되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청주 어느 하천에서도 한 그루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꽃 친구 하나가 가까운 곳에 왕자귀나무 군락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진천휴양림에 근무하는 안상숲 해설사가 발견하고 알려 주었단다.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달려가 확인해보니 한두 그루가 아니다. 아스팔트 도로 양옆의 여기저기 40여 주 이상이 자라고 있었다. 가끔씩 섞여 자라는 아까시나무와 비슷해서 관심을 받지 못한 것 같다.

국내에 왕자귀나무가 이렇게 많은 개채수가 집단으로 자생하는 곳이 많지 않다. 이곳이 자생지라면 얼마 전에 금산에서 발견된 것보다 가장 북반구에 위치하는 자생지가 되는 셈이다. 어린나무들은 여러 가지 덩굴 식물 때문에 일부가 말라 죽은 것도 보인다.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간섭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간섭으로 자생지를 보호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 기사화를 부탁했다. 덕분에 칼럼 쓰는 일에 또다시 호출되었다.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왕자귀나무. 유달산을 몇 번씩 다녀왔지만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다.

꽃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내년을 기약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재확인 차 다녀오는 길에 채고추나물, 산해박까지 만났으니 오늘은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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