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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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0.07.06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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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시간이 지날수록 고맙다. `서기만당瑞氣滿堂'이라는 휘호 때문이다. 내용에 대해서 알고 난 후부터 언제나 의미 있는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글자 하나하나가 마치 액자 속에서 살아 있는 것만 같아서다. 집안에 좋은 기운이 가득하라는 뜻을 지녔으니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스러움까지 지니며 산다.

선물이란 다양하다. 애틋함이 깃들였기에 삶의 한 부분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가깝게 하는 역할마저 포함되어 있다. 다만, 옳고 그름을 해내는 분별력이 필요할 뿐이다. 기억하며 들여다볼 때마다 전해 준 사람의 마음을 회상하는 즐거움은 또 다른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지방 어느 문화원에서 서예를 지도하는 분이라 했다. 초면이었다. 내게 무언가 주고 싶어서였겠지만 지나고 보니 이를 데 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당신이 지닌 물질이 아니라 지혜와 지식을 내게 주고 떠나셨다. 내용을 떠올릴수록 새로운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누구에게나 잠재적으로 삶의 안위를 갈구하는 마음 가득해서일까.

무슨 일에든 적잖은 감사를 이어가는 편이다. 잠자리에 들 때면 평안함에 감사하고 다시 시작될 내일을 위하여도 안녕하기를 기원한다. 모두 같은 심정이리라. 하지만, 수많은 시간과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 둘러져 있다. 원치 않는 일과 불가항력에 다다를 때가 생겨나기 마련이 아니던가. 그래도 하루하루 헤치며 나가는 가운데 안정이 찾아들고 새로운 땅과 하늘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올바른 물꼬를 찾는 일이다.

처음에는 글자선물의 의미를 벅차하지 않았었다. 표구를 해서 벽에 걸어두기까지 약간의 치장쯤으로 생각한 점도 있었다. 돌아보니 부끄럽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진가를 알게 된 셈이다. 영원히 닳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글자의 영령에 빠져 들어가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의미를 짚어보며 조용히 눈감는 버릇도 생겼다. 두고두고 고맙다.

특별한 선물이었다. 서기만당이라는 뜻을 되새길 때마다 써주신 분의 정성이 가깝게 와 닿는다. 잘 보이는 곳에 두고자 하여 천장 가까이에서 비스듬히 내려다보게 부착한 일도 아주 잘한 것 같다. 보아도 보아도 닳지 않을 글씨의 무게에 내가 압도당하는 형상이다. 혹여 나 자신도 글자의 내용만큼 좋은 기운을 향해 노력하면서 살아온 날들이었는지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오른다.

오늘날까지와 다가올 내일의 평안을 떠올리고 있다.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정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지배적으로 움직여 준다는 사연들을 말하고 싶다. 조금 부족한들, 남들보다 뒤처지게 보인들 어떠랴, 하는 낮은 마음이 몰려와 위안을 허락해 준다. 웃을 수 있고 만족해하는 것이 삶의 기쁨이란 것을 알았다. 지금도 표구 속의 글자가 여전히 살아있듯 움직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득한 몸짓이다. 금방이라도 밖으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내 삶의 언저리에 푯대 하나 꽂아둔 형상을 하고 있다.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기분이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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