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과 보존', '안전과 역사'의 청주 월오동 고인돌
'개발과 보존', '안전과 역사'의 청주 월오동 고인돌
  •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 승인 2020.06.0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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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김명철 청주 봉명고 교장

 

청주의 신도시 개발로 아파트 공사가 진행 중인 동남지구를 거쳐 목련공원 가는 길에 오른쪽으로 선도산이 그리고 왼쪽으로 낙가산이 아늑하게 품고 있는 월오동 서원마을이 있다. 이곳에 청주시 국민체육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건물 뒤쪽 언덕에서 청동기 시대 고인돌 25기가 무더기로 발굴됐다. 5월 중순까지 출토된 유적·유물만 청동기 고인돌 25기, 석검 3점, 토기 3점, 화살촉 18점, 인골 3구 등이다. 쏟아진 유물로는 청동기인의 전신 뼈와 간 돌칼, 화살촉 등 간석기다. 특히 발굴된 간 돌칼과 단도마연 토기는 우리나라 청동기를 대표하는 유물로 청동기 시대 지배층의 권력을 상징하는 유물이다. 아마도 2800년 전 청주지역을 지배하던 지배층의 집단 무덤으로 보인다.

특별히 이곳 월오동 고인돌 유적은 고인돌 박물관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이 발굴되었는데 묘역식,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1차 무덤을 조성한 후 퇴적토 위에 또다시 2차 고인돌을 조성한 유일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고인돌의 조성 과정을 알 수 있는 고인돌을 만들었던 채석장도 존재하고 있어 그 가치가 더 높게 평가된다.

역사학계에서는 대략 기원전 1000년 무렵에 이르면 구리를 주 원료로 주석이나 아연을 섞어 만든 청동기를 도구로 사용하는 청동기 시대가 시작된다고 본다. 이 시기부터 농경이 발달하여 잉여 생산이 생기게 되고, 사회집단 내부에는 빈부의 격차와 신분과 계급이 발생한다. 청동기를 사용하는 우세한 지위를 가진 권력자도 나타난다. 권력이 생기면서 사회 조직과 함께 초기 국가가 발생하는 과정에 들어간다. 청주의 동남쪽에 강을 끼고 낮은 구릉지대에 고인돌 떼가 있는 것은 아마도 청주지역의 지배 세력들의 집단 거주지가 아니었을까 한다.

청동기는 대부분 `지석묘'라 불리는 `고인돌'에서 출토되고 있다. `고인돌'은 말 그대로 `돌을 고여서 만든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인돌의 용도에 관해서는 아직도 학계에서는 논란이 있지만 무덤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덤 속에는 주검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토기나 석기, 청동기 등의 다양한 유물을 넣기도 하므로, 무덤은 그 시대의 사회상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 된다.

고인돌은 전 세계에서 발견되고 있지만,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 등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많은 수의 고인돌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약 3만여 기, 북한에서 약 1만 기에서 1만 5000기에 가까운 고인돌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세계 고인돌의 40퍼센트 이상 한반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화, 고창, 화순의 고인돌 유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고 있다.

그동안 존재가 없던 이곳 월오동 고인돌은 산사태로 유적 전체가 토사에 묻혀 있다가 최근 재난안전체험 복합타운 건립 공사 때문에 드러난 것이다. 산사태 덕분(?)에 도굴과 개발에서 보존이 가능했던 것이다. 몇 해 전 오송봉산리 유적과 청주테크노폴리스 백제 마을 유적을 경제적인 논리로 문화유산을 파괴한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길 바란다.

`교육의 도시 청주'의 정체성을 살리는 차원에서라도 개발과 보존, 안전 교육과 역사 교육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함께 웃는 청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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