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의 도시이야기
김진애의 도시이야기
  •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0.06.0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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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나는 시골에서 자랐다. 작은 구멍가게가 딱 하나만 있었다. 과자 몇 개를 팔고 주로 동네 아저씨들의 새참으로 술을 함께 파는 그런 가게였다. 내가 먹고 싶은 과자는 늘 없는 가게였지만 문을 닫으면 아주 아쉬웠다. 무엇을 사러 가려면 기찻길 건너까지 걸어가야만 했으니깐 말이다.

기찻길 건너 세상은 도시 같았다.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저 세상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같고 우리 집은 마치 멈춰 있는 풍경화 같았다. 앞집 숟가락이 몇 개가 있으며, 뒷집은 오늘 저녁 무엇을 먹는지, 또 언덕 위에 새로운 집엔 누가 이사 왔는지 너무 속속들이 아는 이 동네가 나는 조금 불편했다.

여름밤이면 우리 집 앞 공터에는 삼삼오오 어른들이 모여 있었다. 부채 하나씩 들고 오고 가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저 아이는 누구 집 자식이며 무엇을 한다더라 등등의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자리에 엄마도 당연히 있었다. 엄마는 딸들 단속에 나섰다. 늦은 시간에 들어온다 싶으면 30분이 멀다 하고 전화를 하셨다. 다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이 싫으셨으리라. 그런저런 이유로 아파트 숲의 삶을 꿈꿨다. 낯선 사람들과 모른 채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김진애 저·다산초당·2019)는 그런 나의 꿈을 깨 주는 책이었다.

이 도시에는 다양한 이야기와 역사가 있고, 권모술수, 휴머니티가 있는 곳이라고 저자는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도시가 생김으로써 우리의 삶이 그려지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는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속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삶의 공간이 아닌 돈의 욕망이 표출되고 있으며 점점 하늘과 가까워지고 있다. 아파트 숲이 빽빽이 들어서고 있으며 길을 막아서고 있다. 도시가 아니라 고립된 성이 되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가장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신도시에 가게 되면 종종 방향을 잃는다. 이쪽저쪽 둘러봐도 똑같다.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아파트와 상가 특색도 없다. 갑갑하기만 하다. 이런 도시에서 어떤 즐거운 이야기가 그려질 수 있을까? 길을 따라 이야기가 피어나고 걷다가 잠시 쉬며 바라보고 좋은 도시를 우리는 만들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땅에 잠시 살고 간다. 오래 살아야 백 년 남짓이다. 이 도시에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길을 막고 아파트 성을 쌓는 것보다 길을 열고 사람이 오갈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탐욕과 권력이 넘치고 서로를 밀어내는 도시가 아닌 서로를 보듬고 웃고 함께하는 그런 도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부터 누군가를 만나면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야겠다. “즐거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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