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의 심리학
거리두기의 심리학
  • 양철기 교육심리박사·음성 원남초 교장
  • 승인 2020.05.28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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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박사·음성 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박사·음성 원남초 교장

 

존경받는 지역 기관장의 집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비서의 허락을 받고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가 순간 당황을 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한 발 짝 더 들어가니 왼쪽에 간이 칸막이가 있고 그 뒤에 집무 책상이 있었다. 뭔가 어색한 사무실 배치였다.

상사의 책상을 출입문에서 가급적 멀리 배치하는 것은 집무실 공간이 넓게 보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용건이 있거나 결재를 받으려는 사람이 좀 더 먼 거리를 걷게 만든다. 공간을 사용하여 권위를 만드는 면밀한 기술 중의 하나다.



#권력자와 공간

권력을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방법으로 오래전부터 공간활용이 사용되어왔다.

1700년 전 로마황제를 알현하려면 67미터의 기둥도 없는 거대한 콘스탄틴 바실리카 홀을 홀로 걸어가야 했다. 67미터의 긴 홀을 걸으며 느끼는 적막감과 격리감은 황제 앞에 다다른 순간 최고점을 찍게 되고 그것만으로도 권력자의 위세에 압도당하게 된다.

히틀러의 신 제국청사에 있는 집무실은 140미터의 대리석 복도를 지나야만 히틀러를 만날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리고 그의 집무실은 거의 400제곱미터였다. 아마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에서 결재를 받으려면 상당한 거리를 걸어가야 할 것이다.

공간이 권위를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연출은 긍정과 부정적인 면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권력자와의 만남이 쉬운 것이 항상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권력자들은 체득했을지 모른다.

실례로 학생들에게 언제나 문을 열어두는 교수가 학생과의 대면을 꺼리는 교수보다 인기가 많을 수는 있지만, 그만큼 더 존중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권력자나 상급자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개인 간 거리두기 심리

요즘 거리두기로 인해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의 인간관계에서의 거리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인용되고 있다. 홀은 인간관계의 거리를 친밀한 거리(50cm 미만), 사적인 거리(50cm~1.2m), 사회적인 거리(2m~3.8m) 공적인 거리(3.8m 이상) 등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는데 문화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다.

이러한 거리는 상대방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일수록, 친밀한 관계일수록 또는 온화해 보일수록 더 가까운 거리를 허용한다. 또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개인 간 거리는 증가한다. 6살 정도까지는 서로 모르는 사이라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밀접하게 붙어서 논다. 그러나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개인 간 거리는 꾸준히 증가한다.

사람은 두려움이 클수록 주위를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그리하여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다양한 방어신호를 보낸다. 특히 `친밀한 거리'나 `사적인 거리'로 접근할 때는 상대방의 방어신호를 잘 알아차려야 한다. 상대방이 보내는 대표적인 방어신호는 팔짱을 끼는 것이다. 이는 신체적으로 자신의 몸에 철벽을 치는 것과 같다. 대화 중 상대가 팔짱을 낀다면 한걸음 물러서 줌으로써 상대가 경계심을 풀게 해야 한다.

상대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거나 어디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찾듯 고개를 슬쩍 비트는 것도 방어신호이다.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는 것, 더욱이 꼬고 앉은 다리를 상대 쪽으로 좀 더 뻗은 것은 확실한 방어 표시다. 이때는 확실하게 뒤로 물러서 주어 상대가 경계심을 풀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등교한 우리 아이들에게 물리적 거리두기를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참 쉽지가 않다. 에드워드 홀이 다시 살아와도 에너지 넘치는 우리 아이들 거리두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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