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의 무서움
익숙함의 무서움
  • 서옥진 청주 봉명1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 승인 2020.05.1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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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서옥진 청주 봉명1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서옥진 청주 봉명1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대학시절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지은 지 비교적 오래된 기숙사였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선배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사는 기숙사 옆 동에서 학생이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신입생을 놀리기 위해 한 말이란 걸 알았지만 처음 몇 주는 그 건물을 지날 때 괜히 신경 쓰여 해가 넘어가면 그쪽으로는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외출하며 너무 자주 마주쳤기에 나중에는 그저 배경 중의 하나로 생각됐다. 처음 몇 번 그곳을 지나가며 느꼈던 감각의 예민함은 외출 경로 중 한 지점이 되며 사라져갔다.

지난 겨울부터 이어온 코로나19와의 사투는 끝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확진자는 말 그대로 일반 대중으로부터 격리돼 있고 당장 우리의 눈에 보이는 병에 걸린 사람이 없기 때문인지 초반보다 코로나19에 대한 경계심이 약해진 듯하다. 익숙함은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시점에 안일함을 야기한다. 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전염병이 됐고 기간이 길어질수록 예민했던 관심은 무뎌지고 작아진다. 당장 큰일이 날 것 같은 호들갑은 좋지 않지만 현상을 과소평가하는 태도는 더 위험하다.

하지만 오직 감염병 예방만을 생각하기에는 경제활동 침체 등의 부작용도 작지 않기에 정부는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했다. 공공시설 중 국립공원 등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실외분산시설에 대해 방역 수칙 마련을 전제로 단계적으로 운영을 재개하고 실외 밀집시설의 경우 `분산'이라는 조건을 달성할 수 있다면 제한적으로 운영을 재개하는 것이다.

민간 부분을 살펴보면 필수적인 시험 등 불가피한 경우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시행을 허용한다. 다만 유흥시설, 일부 생활체육시설, 학원 등은 감염 확산의 위험이 높기에 기존 행정명령을 유지하되 그 내용을 운영 중단 권고에서 운영 자제 권고로 조정한다.

나는 지구적인 재난이 발생한다면 한 명의 영웅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라면서 봐온 영상미디어의 영향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목격한 것은 한 명의 두드러지는 얼굴, 한 명의 초인적인 힘이 아닌 다수의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사회에 이바지하려는 모습이다. 의료진은 살인적인 일정을 감내하며 환자를 돌보고 있고 어떤 이는 자신의 마스크를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나눠줬다.

싱가포르는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받다가 개학과 일상 복귀 후 1개월간 확진자가 14배 증가했다. 나는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가 아닌 일상으로의 `건강한' 복귀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로나19에 대한 익숙함을 경계해야 한다. 방역 시스템이 한 명의 방심으로도 와르르 무너지기 쉽다는 것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우리 모두의 전염병에 대한 조심성과 예민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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