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창고(氷庫)와 물탱크(貯水施設)가 있는 보은 성주리유적
얼음창고(氷庫)와 물탱크(貯水施設)가 있는 보은 성주리유적
  •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 승인 2020.05.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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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시선-땅과 사람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

 

보은군은 스포츠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중부권 최대의 스포츠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요구되는 스포츠문화를 개척해 가고 있다. 스포츠파크 조성은 스포츠문화 활성화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보은스포츠파크 조성부지는 삼년산성이 자리한 능선의 서쪽에 남북으로 길게 형성된 독립능선(해발 245.7m)의 사면부에 해당한다. 스포츠파크 조성을 계기로 이 일대에 대한 매장문화재 조사가 2013년 이루어졌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백제시대 주거지와 수혈유구(竪穴遺構), 신라시대 주거지와 무덤·우물, 조선시대 주거지, 근대의 독무덤[甕棺墓] 등 83기의 유구와 4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고고학적 자료는 이곳에서 청동기시대부터 근대까지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영원의 안식처로 삼아 삶을 이어왔음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이곳이 보은 성주리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찾은 다양한 문화흔적 중 주목되는 것이 큰 규모로 조성된 수혈유구이다. 완만하게 뻗어내린 능선 정상부에 풍화암반토를 깊게 파고 만든 수혈유구 2기가 찾아졌다. 1호 수혈유구는 평면 원형으로 규모는 길이 7m, 너비 6.8m, 깊이 2m이고 능선 경사면 쪽으로 길이 3m, 너비 0.6m, 깊이 0.98m의 배수시설을 길게 조성하였다. 벽면은 완만하게 파내려갔고 바닥면은 편평하게 조성하였으며 바닥면 중앙에 소형 구덩이가 파여져 있다. 2호 수혈유구는 1호와 동일능선상의 북쪽편에 있다. 평면형태는 원형이며 규모는 길이 5.9m, 너비 5.2m, 깊이 2.1m이고 배수시설은 없으나 바닥면 중앙에 소형 구덩이가 파여져 있다. 수혈유구 주변으로는 백제시대 주거지가 분포하고 있어 주거지와 수혈유구가 밀접한 관련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수혈유구는 입지와 형태에서 공통점이 찾아지나 배수시설의 존재유무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유구의 성격과 기능에 차이가 있음을 말해준다. 대형 원형수혈, 내부퇴적토에 숯 층의 존재, 바닥면에 파인 소형수혈, 배수시설 등을 갖춘 1호 수혈유구는 백제시대 빙고시설로 추정되며, 배수시설이 없는 2호 수혈유구는 저수시설로 판단된다. 빙고와 저수시설의 공존양상, 유구 형태와 입지, 내부퇴적양상과 숯층의 존재, 배수시설, 내부 바닥면에 소형 구덩이의 존재 등은 공주 정지산 백제시대 유적에서 확인된 빙고 및 저수시설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백제 사람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과학문화유산이다.

빙고는 겨울에 채집한 얼음을 여름철에 사용할 수 있도록 장기간 보관하는 창고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돌로 만든 얼음 보관창고인 석빙고(石氷庫)는 조선시대 후기에 축조 또는 개축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경주·안동·창녕·현풍·청도·영산·해주석빙고 등 7기가 남아 있으며 모두 사적 또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석빙고와는 달리 보은 성주리유적에서 확인된 빙고는 토광(土壙)형태의 얼음보관 창고로 백제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얼음이 녹지 않도록 효과적인 단열을 위해 파낸 흙을 겹겹이 쌓고 중간에 숯을 깔아 외부 공기를 차단하여 보존성을 높이도록 시설하였다. 또한 안에 저장된 얼음이 녹은 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배수시설을 설치하였다. 주거환경을 고려한 입지선택과 효과적인 단열시설을 갖춘 빙고는 과학기술이 집약된 우리 겨레의 과학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보은 성주리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삶을 꾸려왔던 생활공간이었으며, 문화흔적을 담은 역사적 장소이다. 역사적 장소로서의 자연환경은 바뀌었으나 오늘날 이곳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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