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두에게 다 줘야 한다
무두에게 다 줘야 한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2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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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긴급재난지원금'이 처음 거론되었을 때 나는 `한국사회가 이를 시끄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회의적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승은 점점 더 심해졌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활동은 정반대에서 작용해야하는 경제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급기야 경제적 기준으로 국민 70%에 대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부의 정책결정은 이루어 졌고, 나는 지금도 `이건 더 실현 불가능한 일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기'가 겹으로 위협하는 한창의 불안한 시기는 마침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를 구걸해야 하는 선거의 계절이었다. 야당 대표는 전격적으로 `모든 국민 50만원씩 지원'을 공언했고, 이를 놓치지 않고 여당에서도 호응했다. 그리고 정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70%를 고수하고 있고, 야당은 말을 바꾸고 있으며, 선거에서 승리한 여당은 모든 국민에게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이 모든 국민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우선 70%를 선별한다는 것이 또 다른 차별과 분열을 가져올 것이고, 그 기준을 가르는 경계 지표가 국민 누구나 납득할 정도로 정확한 가의 문제다. 그런 선별을 위한 기준 나누기 작업을 불평과 불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그동안의 행정을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심은 강조하지 않겠다. 그런 복잡한 셈법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주사 한 대의 처방이면 될 것을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 타이밍의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70% 선별지급은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착오일 뿐이다. 국민을 편 가르는 일이고, 차별과 상대적 박탈감 또한 가져올 수 있다. 30%에 해당됨으로 받지 못하게 되는 계층 역시 자랑스럽지 못하고, 70%에 속할 경우 자괴감이 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게다가 세금은 더 많이 거둬가면서 혜택에서는 제외한다는 불평과 불만이 부자이기 때문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감히 돈 앞에서. 그러니 조세저항은 노골화될 우려가 크고, 세금이 걷히지 않으면 기획재정부가 그렇게 애태우는 재정건전성의 문제도 점점 더 유지하거나 지탱하기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우리는 1997년 IMF 위기가 당시 OECD 가입을 위해 원화가치를 높게 평가해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유지하려 했으며, 환율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함으로써 벌어진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보수언론이 불안과 위기를 부풀리는 지금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38%로 OECD회원국들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은 훌륭하게 유지되고 있다. 국가부채가 무려 GDP대비 237%에 달하는 일본은 홍남기장관처럼 걱정하는 경제 각료가 없어서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했을까.

코로나19로 우리 국민 모두는 미증유의 사태를 힘겹게 보내고 있다. 전 세계를 팬데믹으로 몰아넣은 코로나19로 미국이 허둥거리고, 일본은 망연자실한 상태를 보내고 있는 와중에 세계 각국에서 모범적 방역국가라는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진정세가 뚜렷해지고 있는 우리나라 코로나19의 위기 탈출에 노심초사하지 않은 국민은 없다. 물리적(사회적)거리를 착실하게 지켰으며, 긴 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빠짐없이 마스크를 썼다.

그러니 재난지원금은 감염병의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고 빠짐없이 노력해왔던 모든 국민이 함께 나누는 위로와 격려의 포상금으로 여겨도 충분할 것이다. 혹시 알겠는가. 모든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을 때, 30%에 해당하는 부자들이 `나는 이것을 받지 않아도 되니 다시 국가와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다시 착한 소비와 성금으로 이어지면서 용기와 신념이 들불처럼 이어져 경제도 부활하는 공동체 사회는 충분히 가능하다.

2010년 출간된 책 <두려움 없는 미래>에서 “문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 위기극복을 위한 실천에 참여할 수 없다는 생각이며, 인간은 어디에 있든지 새로 형성되는 인류 역사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 “위기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는 문장에 굵게 그어진 밑줄이 새삼 도드라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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