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채
뒤채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0.04.14 20: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따뜻한 봄 탓일 게다. 헐렁개비처럼 나물을 하느라 집 근처 밭기슭이나 두렁길을 기웃거리며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무료함을 달래려 나선 것이 시작이었다. 그런데 나물이 어디 그리 쉽게 찾아질까 하는 내 우려와는 다르게 캐고 보니 한 끼는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큼이 되었다.

냉이와 달래는 장을 끓이고 이참에 씀바귀는 김치를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씀바귀가 김치를 담그기에는 양이 적은 것 같아 좀 더 캐기로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씀바귀를 찾아 땅만 쳐다보며 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뒷집 마당까지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빈집이 되어 버린 뒷집의 흙담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해 다 무너져 가고 있었다.

봄은 주인이 없는 뒷집에도 찾아와 뭉그대고 있다. 화단과 마당은 이미 경계가 없어진 지 오래, 잡초와 화초가 뒤엉켜 영역싸움을 벌이고 있다. 봄바람은 그 어느 것에도 치우침이 없이 고루고루 사랑을 뿌려주는 중이다. 그동안 잡초라는 이유로 번번이 뽑혀나가 널브러져 죽어나간 조상의 한을 갚기라도 할 냥인지 야생 넝쿨 식물들은 그 기세가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우저적 높아지고 있다. 덩치 큰 골담초도 그리도 자태가 곱던 홍매화도 마른 넝쿨식물들이 온몸을 칭칭 감고 있어 그 옛날 영화롭던 때가 있었던가 싶다.

마당 여기저기에는 과연 실한 씀바귀가 많이 보였다. 뒷집은 우리 집에서 바로 보이는 본채와 뒤채의 구조로 되어 있다. 매일같이 마주하는 집인데도 혼자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니 왠지 오스스하니 머리가 쭈뼛했다. 뒤채에도 예전에는 사람이 살았던 듯 방과 부엌이 보였다. 물론 그도 오래되어 여기저기 허물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그때 우리 집 옆으로 맞대어 있는 밭의 주인인 동네 아주머니가 나를 본 모양이었다. 그렇잖아도 궁금했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뒷집의 뒤채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혼자 들어가기가 무서워 망설였는데 당신도 같이 보고 싶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젊은 사람이 겁도 없냐며, 뒤채의 작은 문을 열어보자고 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먼저 열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가슴이 두근두근 솜방망이질 치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몰랐다면 몰랐을까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앞마당과는 다르게 뒤채는 제법 사람이 길을 낸 듯 반들반들하니 풀이 많이 없었다. 마당 곳곳에는 탐스런 씀바귀가 보였지만 서둘러 우리는 뒷집에서 나왔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내 얘기를 듣고는 곧장 뒷집으로 가보자고 했다. 남편이 얼마나 든든해 보이던지 역시 남편은 남자였다. 남편은 거침없이 뒤채의 쪽문을 열어 보았다. 세상에, 그곳은 누군가가 화장실로 이용하고 있었다. 남편은 머뭇거림도 없이 본채의 뒷문으로 향했다. 스티로폼으로 얼기설기 덧대어 놓은 문을 버적대니 갑자기 웬 남자가 나오는 게 아닌가.

자신은 경제사범으로 쫓기는 중이라 이곳에 숨어 지내는 중이라고 했다. 매일같이 보던 뒷집인데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서 보이는 방문에는 이불로 가려 불빛도 새어나오지 않게 했으니 우리가 알 턱이 없었다. 그렇게 숨을 죽이고 살았을 것이다. 그날 밤, 그 남자는 동네 이장의 호통으로 뒷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마른 체구에 눈은 퀭하고 언제 빨았는지 모를 누런 티는 늘어질 대로 늘어져 더 없이 초췌해 보이던 그 남자, 또 어느 빈집을 찾아 숨어들어 갈까. 찾기는 찾았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도 뒷집 마당에는 붉은 입술로 웃는 명자나무 옆에서 맘씨 좋은 봄볕이 해나른히 졸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