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모든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4월, 모든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31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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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지상으로 내려앉은 목련 꽃잎은 볼 때마다 심란하다. 꽃이 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을 떠올리는 것은 차라리 비극이다. 꽃잎은 겨우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흩어지지 않고 꽃송이가 툭-하고 무너져 내리는 이른 봄 제주 바닷가 동백꽃 낙하의 순간은, 하나의 우주가 눈앞에서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일 수 있다.

하얗게 빛나던 목련꽃잎이 하나씩 해체되며 떨어질 때, 그 꽃잎의 비행은 멀지 않고 오래 걸리지도 않는다. 추락하는 모든 지상의 것들은 오래 날지 못한다. 봄바람에 몸을 실어 난분분 흩어지는 무심천 벚꽃이 차마 아쉽다 해도 꽃은 애당초 피었다 지는 것.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약속되고, 우주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다.

꽃은 반드시 지금이 아니라 내년에도 피어날 것이고, 별일이 없다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그날을 기약할 수 있는데…. 점점 길어지고 있는 기다림의 4월은 유난히 잔인하다. 그러나 이 또한 견디지 못한다면 반드시 다시 찾아올 찬란한 봄은 영영 잃고 말 것이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포크 듀엣 가수 `시인과 촌장'의 노래 <풍경>을 들으며 맞는 4월.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우리는 너무도 빨리 왔다. 우리는 너무 함부로 살아왔고, 너무 이기적이었으며, 너무 생각 없이 살아왔다.

여전히 인류가 정확하고 확실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어쩌면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호모사피엔스에 대한 미룰 수 없는 경고일 수도 있다.

정상이 아닌 일상의 나날들이 거듭되면서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벽이 만들어지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연결이 끊겼으며 일부러 거리를 떨어뜨려야 하는 단절의 시대를 힘겨워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대로 더 견디기 어려워지고, 그 후유증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깊어질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일그러진 일상은 우리에게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겨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병들어 죽기 전에 굵어 죽게 생겼다'는 하소연에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것이 커다랗게 고난과 위기를 극복하고, 머뭇거리지 않는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를 비로소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4월의 시작이다. 꽃들은 앞다투며 피고 질 것이고, 산천은 푸르른 희망으로 색깔을 바꿀 터인데, 우리의 봄은 더 깊게 잔인하다. 그런 황토 빛 잔인함에도 생명의 찬란함은 묵묵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으니, 우리가 조바심내지 않더라도 온전한 희망은 언제나 우리의 몫이다.

인류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크게 구분될 것이다. 무너진 일상에서, 그동안 우리가 함부로 살아오거나 탐욕인지도 모른 채 성장과 전진, 속도와 크기에만 집착해왔던 모습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알지 못하는 불안 대신, 그동안 우리가 무시해왔던 모든 생명의 존엄함을 깨닫는 깊은 성찰의 시간은 어떤가. 더 침착하고 차분해야 할 4월의 풍경.



머뭇거리지 마라

너의 무게는 어디에 내려놓아도 좋으리

아가 곁에 누워도 좋고

파지 한가득 싣고 가는 리어카 위도 좋고

고독한 방랑자의 발등이면 더 좋으리

생의 무게만큼 날아올라

암울함이 산란하는 낙도(島) 어느 병상에

비처럼 뿌려지면

머뭇거리는 봄 햇살보다 더 좋으리니

너의 삶을 견인하는 바람이 오늘은

오래된 편지처럼 고독한

나의 창으로 불었으면 좋겠다.

- 이채민.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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