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관점
늑대의 관점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20.03.2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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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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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철학자는 동양철학의 핵심은 `관계`라고 규정지은 바 있다. 아울러 순환적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도 했다. 어떤 상황과 관계 속에서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관점과 시각에선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다.

얼마 전 조셉 제이콥스의 『영국 옛이야기』를 구입해서 읽은 적이 있다. 본질과 원인, 원류에 대한 나의 이상한 집착이 헌책방을 뒤져 찾아낸 책이다. 사건이 축소되거나 삭제되긴 했지만 큰 이야기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있는 아기 돼지 삼 형제 동화를 모티브로 한 다른 버전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 『아기 돼지 세 자매』, 『아기 늑대 삼 형제와 못된 돼지』, 『아기 돼지 삼 형제가 경제를 알았더라면』등이 있었다. 그중에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기 돼지 삼 형제를 차례로 잡아먹은 늑대가 감옥에서 자신은 억울하다며 변론을 하는 게 중심이야기다. 모든 것은 재채기와 설탕 한 컵에서 시작되었다며 자기변호를 시작한다. 감기에 잔뜩 걸린 착한?늑대는 할머니 생신 케이크를 만들다 설탕이 떨어졌다. 그래서 이웃에 사는 첫째, 둘째 돼지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돼지의 문 앞에서 재채기를 하고 나니 보이는 것은 통통하고 먹음직스러운 햄이 있었다는 것이다. “너희도 알지? 음식을 바깥에 그냥 두면 상하고 만다는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그걸 먹어 치우는 것뿐이었어.”라고 서슴없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한다. 심지어 셋째 돼지는 늑대 할머니에 대해 다리가 부러지라는 `패드립'하고 만다. 할머니 흉을 보는 돼지에게 화가 나서 집 문을 부수려는 찰나 경찰이 들이닥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자들은 순수하게 설탕 한 컵을 얻으러 온 늑대보다 돼지를 잡아먹은 늑대에게 초점을 맞춰 기사를 쓰고 자신은 감옥에 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늑대의 관점에서 엮은 이야기에 당신은 공감하는지 묻고 싶다. 늑대의 운명은 돼지를 잡아먹는 것이고 처음부터 잡아먹을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은 묘하게 끌리기도 한다. 그림책은 독자로 하여금 무엇을 끌어내고 싶었는지 셋째 돼지의 눈은 험상궂고 늑대 눈은 선하게 그려 넣음으로 혼란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언론 조작으로 자신은 커다랗고 고약한 늑대가 되었노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한테 설탕 한 컵쯤 꾸어 줄 수 있겠지?”라고 말한다.

`관계'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연'이라고 한다. 어느덧 봄과 함께 총선의 계절이 돌아왔다. 당적을 옮겨 새로운 관계와 인연을 맺는 사람의 자기 합리화가 있을 테고, 여러 행동과 말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예전의 당과 이름을 바꾼다고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화사한 말투와 선한 눈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지만 늑대는 늑대의 본질을 벗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 가짜뉴스에 노출되어 살고 있다. 부디 선거운동이 시작되고 총선이 치러지는 짧은 날들만이라도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본질과 정체를 살펴 소신 있는 투표권을 행사했으면 좋겠다.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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