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찐자’가 주는 메시지
‘확찐자’가 주는 메시지
  • 하성진 기자
  • 승인 2020.03.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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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하성진 부장
하성진 부장

 

`확찐자'. 얼핏 들었을 때는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은 환자가 떠올랐다.

언론은 물론 오프라인을 통해 하루 수십번은 듣는 까닭이다. 확진자의 `진'에 악센트를 준 것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코로나19 공포로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아 살이 급격하게 찐 사람을 이르는 신조어라는 의미를 알고서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등 범정부차원의 고강도 방역 드라이브가 가동 중인 비상시국에 청주시 안팎에서는 난데없이 `확찐자'가 핫키워드로 떠올랐다.

사무관 승진을 앞둔 청주시청 모 부서 여팀장(6급)이 8급 계약직 여직원을 향해 `확찐자' 발언을 하면서 사달이 났다.

A팀장은 지난 18일 오후 5시 10분쯤 청주시장 비서실에서 결재를 받으려 대기하던 중 여직원 B씨의 겨드랑이 부위를 손가락으로 두 차례 찌르며 “`확찐자' 여기 있네. 여기 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열명 남짓한 직원들 앞에서 조롱당한 B씨는 그를 모욕죄로 청주상당경찰서에 고소했다.

“당시 매우 당황한 나머지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이튿날 A팀장에게 사과를 요청할까 생각했었다”라는 B씨는 “하지만 계약직 신분으로 6급 팀장을 상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게 직급 구조상 쉽지 않다는 판단에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라고 고소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A팀장이 이틀 후 사무실에 찾아와 `기억은 안 나지만 미안하게 됐어'라고 말했는데, 이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면서 “법적으로라도 시시비비를 가려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싶다”라고 전했다.

양쪽 얘기를 충분히 들어봤다. B씨의 말은 매우 일관되고 객관적이었다. 하지만 A팀장은 `나를 표현한 것인데 오해할 수 있겠다'라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해명에는 모순도 발견됐다.

경찰 수사를 통해 시시비비가 가려지겠지만, 신빙성의 무게 추는 B씨에게 기울어졌다.

`확찐자'라는 말이 코로나19 확진 환자를 빗댄 것으로 그들이 겪는 고통을 고려할 때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 문제는 논외로 하겠다.

다만, 이번 일은 단순히 사인 간 고소 사건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계급이 깡패'인 양 하급자에게 언어 폭행을 일삼는 고질적인 병폐가 공직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있다.

더 나아가 우월적 지위 인식이 기저에 깔린 행정직들이 계약직을 깔보는 행태도 곳곳에 팽배해있다.

피해 여직원을 안아주고 보듬어줘도 부족할 마당에 지인을 통해 회유와 압력을 넣는 간부들의 한심한 작태가 이를 방증한다.

이번 일이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고 하급자들을 언어폭력으로 짓밟는 자격 미달의 공직자들이 각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훈계·지도라는 그럴싸한 포장을 둘러 개인의 인격 자체를 `깡그리' 무시하는 언어 폭행을 당하고도 상급자이기에, `문제 삼아봤자 약자인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묻어버리는 직원이 상당수일 테다.

이번 `확찐자' 고소 사건은 약자인 그들에게 언제든 부당함과 억울함을 고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동기부여가 되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조언한다. 사무관 승진을 앞둔 상급자로서 품격을 갖춰 행동할 것을, 몇 해 더 겪은 인생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관용을 베풀 것을 말이다. 또 하나,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라는 속담을 곱씹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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