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에 101년 전 그날을 돌아보다
새로운 시대에 101년 전 그날을 돌아보다
  • 김도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 승인 2020.03.24 2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 포럼
김도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김도연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중원학연구팀장

 

2020년은 3.1절 101주년이 되는 해이다. 어느덧 한 세기를 지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 셈이다. 올해 3.1절 기념행사는 서울시 종로구의 배화여고에서 진행되었는데, 배화여고는 1920년 3월 1일 배화여고의 전신인 배화학당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곳으로 매우 뜻 깊은 장소이다. 하지만 이번 기념식은 코로나19 사태로 100여명 남짓한 조촐한 인원으로 치러져 여느 때와 다른 낯선 모습이었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여러 가지 메시지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봉환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구 선생·유관순 열사·홍범도 장군의 홀로그램이 나타나 `대한독립만세', `대한민국만세'를 선창하는 장면이었다. 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조국의 독립을 맞이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셨는데, 이러한 장면을 보니 새삼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3.1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최대의 항일투쟁이다. 이때 충북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졌는데, 전국에서 가장 늦은 3월 19일에 시작하였지만 그 어느 지역보다 격렬한 시위가 이루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충북 지역은 당시의 10개군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박은식 선생의 『독립운동지혈사』에서 보면 충북지역의 3.1운동은 집회횟수가 44회, 참가인원이 25,750명에 달한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는 우리 역사를 보면 처절한 투쟁이 연속이었다. 반외세를 부르짖던 동학농민운동이 있었고, 일제의 국권피탈에 대항하는 의병운동이 지속되었다. 또한 1910년 이후에는 3.1운동 이외에도 무장투쟁을 비롯한 다양한 방식의 독립운동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분들 중 상당수는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일제의 탄압으로 눈을 감으셨고, 심지어 조국 땅을 밟지도 못한 채 해외에 묻히신 분들도 헤아릴 수 없다. 또 한편으로 독립운동의 현장이었던 사적지의 관리는 어떠한가. 지금도 누군가는 독립운동 현장을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고 있을 것이며, 역사의 현장은 이전의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을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을 떠올린다면 현재 우리는 이분들의 노력에 어떻게 보답하고 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해야 하고, 독립운동의 현장을 찾아내 이를 알리고 보존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난 2019년 3월 충청북도 의회에서 제정한 `충청북도 독립운동 유적 발굴 및 보존에 관한 조례'는 늦었지만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충청북도는 이 조례에 의거하여 도내의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후 이들 사적지에 대한 보존 및 관리 사업을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독립운동 사적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유적의 보존·관리 방안이 수립된다면 도민들에게 독립운동가와 독립운동이 이루어진 역사의 현장이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조국의 독립을 그토록 염원했던 많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기억되길 바라며,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