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심판만 남았다
유권자 심판만 남았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0.03.22 2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비록 적법한 절차를 거쳐 결정됐다 하더라도 내가 동의하지 않은 합의는 얼마든지 깔아 뭉갤수 있다. 비록 위법한 행위라 하더라도 상대가 같은 행위를 한 데 대한 대응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지금 두 거대 정당이 각각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들고 벌이는 후안무치한 행태는 이 해괴한 논리들을 바탕에 깔고있다. 전자는 미래통합당, 후자는 더불어민주당의 변론이다. 명색이 국민이 지킬 법을 만드는 입법부에서 “당신이 반대한 룰은 룰이 아니고, 상대가 룰을 어기면 당신도 어기라”고 가르치는 꼴이다.

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만들자 민주당도 더불어시민당을 출범했다. 모두 지역구 후보는 내지않고 준연동형비례제가 적용되는 30석을 비롯해 47석의 비례의석만을 노리고 급조한 정당들이다. 연동제는 지역구 후보를 많이 낸 정당은 비례의석을 얻기 어려운 구조로 설계됐다. 정당투표에서 유의미한 득표율을 올리고도 지역구 당선자를 내지 못하는 군소정당을 배려한 제도이다. 지역구를 과점해온 민주당과 통합당에겐 불리해진 룰이다. 의석에 눈이 먼 두 정당이 차례로 연동제 취지를 유린하면서 헌정사에 유래가 없는 비례 전용정당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먼저 통합당이 약자들을 위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들이댔고, 제 손으로 차려준 밥상에 손을 대기가 민망스러워 머뭇거리던 민주당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통합당과 겸상을 하겠다고 나선 꼴이다.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들이 당을 깨고 민주당과 통합당으로 복귀하는 진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통합당이 미래한국당으로 선수를 친 것은 한심하긴 하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다. 통합당은 일찌감치 연동형비례제가 통과되면 비례용 정당을 만들어 무용지물로 만들겠다며 반칙을 예고했던 터이다. 그리고 이 정당의 낯두께로 봐서, 망설임 없이 이런 무리수를 밀어붙일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단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연동제 통과를 주도했던 민주당이 통합당을 답습하며 연동제 훼손에 나선 것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통합당이 미래한국당을 출범하자 “국민 의사를 왜곡해 자유로운 정당선거를 방해한다”며 검찰에 고발했던 당사자다. 그러다가 미래한국당이 비례의석을 싹쓸이 하면 1당을 뺏길지 모른다며 좌불안석 이더니 “대통령이 탄핵될 수도 있다”는 궤변을 앞세워 입장을 바꿨다.

민주당은 자신들이 참여할 비례 정당은 군소 야당과 정파를 총망라하는 연합정당이기 때문에 미래한국당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 주도로 탄생한 더불어시민당에는 함께 연동제를 추진했던 정의당과 민생당은 물론 녹색당, 민중당, 미래당 등 기존 진보정당들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연합정당 창당을 함께 모색해온 `정치개혁연합'도 막판에 배제됐다. 정치개혁연합은 진보 성향의 인사와 원로들이 주축을 이룬 단체다. 민주당은 대신 친민주당 계열의 급조된 정당들과 손을 잡고 비례정당을 만들었다. 미래한국당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오죽 했으며 이낙연 공동선대위원장이 `민망한 상황'이라고 자책을 했겠는가.

미래한국당의 행보 역시 가관이다. 모당(母黨)인 통합당과 공천 갈등을 빚던 끝에 당 대표가 사퇴하고 공천관리위원장은 쫓겨났다. 물러나는 대표는 “황교안 대표가 특정 인사 공천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아바타의 반란을 진압한 통합당은 의원 2명을 파견해 대표와 공관위원장을 맡겨 미래한국당을 재 접수했다.

정당법 위반에 해당되는 일이 속속 벌어지지만 위성정당의 길을 터준 선거관리위원회는 손을 놓고있고, 두 정당은 20석 이상의 비례 의석을 얻을 수도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희희낙락하고 있다. 두 당의 분탕질에 대한 심판은 이제 유권자의 몫이 됐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