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사회적 상상력
코로나19와 사회적 상상력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3.0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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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우리 모두는 지금 입과 코를 가리고, 사람을 꺼리는 위기의 시대를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다.

누구라도 가릴 것 없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말 없음'의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말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표정마저도 감추어져 마스크 속의 얼굴이 웃는 것인지 찡그리고 있는 것인지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불확실의 시간을 지루하게 계속하고 있다. 누구라도 사람과 만나면 몸을 움츠리게 되고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비켜서는 불통과 기피의 세상은 아직 그 끝에 어디쯤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더욱 갑갑하다.

그러나 그렇게 지독한 `말 없음'과 무표정, 사람에 대한 외면 속에서도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선한 말과 희생과 봉사의 행동은 세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저력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깨닫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평범한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강제하거나 지시되지 않는 `자발적'의지와 실천은 그동안의 정상적 일상에서의 선한 말과 행동이 얼마나 숨죽이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알아차리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지금 우리는 혼신을 다해 코로나19의 위기를 대처하는 질병관리본부와 지역을 지키는 공무원들, 성금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마스크와 위생 용품을 나누는 익명의 시민들, 임대료를 받지 않거나 줄여주는 건물주들, 그리고 숨쉬기 불편하고 마스크 구입이 쉽지 않더라도 타인을 배려하며 위생에 주의를 기울이는 보통의 사람들과 함께 코로나19 위기의 시대를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다. 그들이 유지하려 애쓰는 사회적 거리는 착한 공기가 되어 마침내 코로나19의 끝을 만들고 다시 일상으로 회복하는 사회적 치유의 동력이 될 것이다.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 정상의 세상에서 고통분담을 위한 어느 착한 건물주의 순수한 임대료 삭감 의지는 건물주 집단의 욕망에서 비롯된 짬짜미로 인해 얼마나 차단되고 무시되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구로 달려가는 의료진들의 숭고한 행진을 통해 불친절하고 돈벌이에만 급급하며, 기계적이고 성의없는 진료로 비난받던 그들의 일상이 의료계 전체에 빠짐없이 스며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확인하게 된다.

미국의 저술가이자 여권운동가 리베카 솔닛이 역설한 `이타주의와의 연대'가 위기의 시대에 오히려 되살아나고 있음을 웅변한다. 그녀가 전염병을 비롯한 각종 재난이 갈수록 강력해지고 점점 더 일상화될 것이라고 진단한 현대사회에서 이타주의와 연대는 보호하고 보호받아야 할 국가주의를 뛰어넘는 시민사회의 진정한 건강성 회복의 근원으로 길이길이 아로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 위기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만들고 사회적 자본을 늘리는 소중한 계기가 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는 역설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회적 자본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상호 협동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만들어내는 무형의 자산을 말한다. 상호간의 이익을 전제로 협력과 협동을 촉진하는 네트워크이거나 규범 등이 별도로 마련되지 않아도 익명의 시민들은 이미 배려와 양보, 희생과 봉사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힘차고 위대한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지금은 여전히 위기의 시대. 사회적 상상력이 더 절실하게 발휘되어야 할 시간이다. 표정과 말을 가리고 숨겨야 하는 마스크는 단순히 공포와 차단이 아니라 안전과 배려, 심지어 자신과 가족 사회를 지켜내야 하는 공공재로써 기능하고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따라서 필요 이상 더 확보하고 싶다는 심리적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읍·면·동과 통·반으로 구성된 행정조직을 통해 필수 물량을 체계적으로 공급하는 공적 네트워크를 가동하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처지를 보듬기 위해 생필품과 위생용품을 자치단체에서 공급하면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공적 관리 시스템을 작동할 필요도 절실해 보인다. 공적 조직의 누군가는 향후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지원과 대책을 위한 사회적 상상력을 미리 마련하면서 대비해야 한다. 완치는 전염병의 징후가 사라졌다는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건강한 일상으로 사람들과 더불어 돌아갈 때 완성되는 것. 위기에서 발휘된 미담을 제도화하는 일로 사회적 상상력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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