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봄에도 꽃은 피는데
빼앗긴 봄에도 꽃은 피는데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0.02.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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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봄이 막 풀무질을 시작했다. 그 바람을 제일먼저 알아차리는 건 꽃이다. 온몸으로 간지럼을 감지한 나무의 살갗에 붉게 뾰루지가 돋아난다. 시나브로 부풀어 오르면 들숨을 길게 들이마신다. 이제 더는 참지 못해 날숨을 뱉어내며 꽃이 열린다. 이때, 된 호흡을 몰아쉬느라 꽃잎이 파르르 떨린다. 올해는 급했는지 한 달이나 앞서서 꽃 숨이 하악하악 들려온다.

잔뜩 움츠려온 나도 이 소리에 기지개를 켠다. 거방지게 펼쳐질 잔치에 벌써부터 들뜬다. 드디어 봄이 나에게 당도한 모양이다. 입춘의 바람결에 마음이 들썽거리는걸 보면 꽃불은 들불 번지듯 금방 퍼질 터이다.

난데없이, 대국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급보가 터졌다. 순식간에 온 세상을 공포로 몰아넣고 만다. 슬그머니 잠재우려던 변종바이러스는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이 바이러스는 바람을 만나 더 기세가 등등해진다. 더구나 지금 불어오는 꽃바람은 봄을 시샘하는 여우바람이다. 어디로 불지, 수시로 방향을 바꾸는 변덕을 부리기에 어디쯤에서 멈출지 모르는 일이다.

막 꽃구경을 나서려고 홰를 치는 상춘객들의 발을 매어놓았다. 산과 들을 누비고 싶어 몸살을 앓는 이들을 가두어놓아 운둔생활을 하게한다. 만물도 겨울잠을 깨어 스님들의 동안거가 해제되는 이때, 사람들은 오히려 칩거로 든다. 마주치는 이들도 마스크를 쓴 채 눈만 빼꼼히 내놓고 다니는 괴물들 같다.

한겨울보다도 더 사람들을 꽁꽁 얼게 만든다. 나에게로 옮겨 올까봐 사람을 만나기 꺼려하여 약속을 미룬다. 인파로 북새통이던 명동거리가 텅텅 비어 한산하다. 축하객이 없는 졸업식은 썰렁하고 가게에도 손님이 없다. 학생들의 방학을 연장하며 병원이 폐쇄되는 곳이 생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격리당하는 이들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남들 앞에서 기침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서양인이 동양인들을 바이러스로 비하하며 욕설을 퍼붓는 광경을 매스컴으로 보았다. 하물며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게 만들고 인종차별까지도 드러낸다. 무색무취로 떠다니며 보이지 않는 폭력을 마구 휘둘러 사람과 사람사이를 이간질한다.

좀비를 각색한 영화를 본 게 생각난다. 마치 상대가 적인 양 경계하게 만드는 고약한 놈이다. 모든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변종. 의학이 발달된 요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 병은 코로나다. 이야말로 호환마마가 따로 없다.

호환(虎患)은 호랑이에게 당하는 큰 변이라는 뜻이다. 마마는 왕을 일컬을 때 쓰는 최상의 존칭어로 천연두를 의미한다. 병을 옮기는 신에게 높임말을 씀으로써 노여움을 덜리라는 주술적 사고에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병세가 잦아들기를 바라는 옛사람들의 간절함이 엿보인다.

진천에서, 아산에서 지역민들이 우한교민을 따뜻하게 보듬지 않았는가. 격리되어 갇혀있는 그들의 외로운 사투를 격려해주어야 한다. 세계의 방방곡곡에서 “힘을 내요. 우한”의 응원메세지가 넘쳐나 훈훈하다. 부는 미풍이 가속이 붙어 금방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 잘 이겨낼 것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어김없이 봄은 곳곳에 깊숙이 들어온다. 사람들에게서 코로나는 봄을 빼앗아갔다. 그래도 꽃은 피고 있다. 사방이 꽃의 향연으로 환해지면 사람들의 마음에도 화사한 봄이 오리라. 그 날은 금세 오리라.

휘영청 보름달이 밝다. 한 해 소원을 비는 나도 간절한 화살기도를 올린다.

`코로나마마. 그만 노여움을 푸시고 물러 가시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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