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잔, 그리고 달달함
파잔, 그리고 달달함
  • 안승현 청주문화산업1팀장
  • 승인 2020.02.25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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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미주알 고주알
미주알 고주알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을 것을 안다. 도와 줄 수 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도 모자라 주변을 선동해 가담하게 만든다. 이 모든 상황을 알면서도 꼬챙이를 매를 든 울타리 밖의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당한다. 멍이 들거나 피가 나지 않지만 정신적 고통을 최대한 주는 선에서 행위는 이루어진다. 잊을만하면 이따금, 그것도 반복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가는 상황에서 죽어야만 자유를 찾을 수 있다. 아프다 억울하다 울부짖어도 소용없다. 나만 아니면 되니, 울부짖는 이유를 알 필요도 없고, 괜스레 연민의 눈빛과 동조했다가는 눈 밖에 날 것이니.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받들어야 한다. 그래야 순간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도는 심해지고, 심한 강도는 익숙해져 당연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덩치는 산만큼 컸어도, 어려서부터 길들여졌기에 당연한 삶으로 받아들이고 매 순간이 켜켜이 쌓여 습성이 각인되어 뭉갤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한다. 알면서 기피하고 길들여진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이따금 소신을 갖고 대응하지만, 어느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의 한 구절로 마무리 된다. “소신, 없는 것들이 자존심을 지키자고 쓰는 단어. 이득이 없다면 고집이고 객기일 뿐이야”.

가끔은 소신을 갖지만 내세우진 않는다. 어차피 나갈 수 없는 철창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꼬챙이를 든 무리들이 철창에 든 대상을 주시하고 있기에, 울부짖으면 안 된다. 울부짖어봐야 반복되는 꼬챙이 질뿐이니깐. 포기하고 우리 밖의 다른 세상을 꿈꾼다. 우리 안의 것은 영혼 없는 육신이다. 영혼은 밖을 동경하고 즐길 준비를 하며 육신이 자유로워질 날 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매년 초, 기획이랍시고 나오는 이야기중 하나가 미디어 파사드, 미디어 맵핑. 그것도 나무를 스크린 삼아 현란한 색채의 빔으로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는 그럴싸한 이야기들이다. 거기에 한 마디씩 덧붙여 조명을 깔고 위아래 사방에서 집중조명이다. 당연 보는 사람들의 눈은 즐겁겠지, 하지만 나무는 심한 몸살을 앓는다. 모진 삭풍을 이기고 덩치를 키웠더니 관심의 정도가 너무 과하다. 그러니 이제 몸집 키우는 것을 포기하고 씨앗을 단다. 더 많은 꽃을 피우고, 더 많은 씨앗을 만들어 후손이라도 만들어야 할 위기에 처함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위기는 꽃이다. 조건이 좋으면 꽃을 달지 않고 가지를 늘리고 몸집을 키운다. 웬만한 역경에서도 뿌리를 더욱 세밀하게 길게 늘일 뿐 꽃을 늘리진 않는다. 꽃은 곧 열매고, 씨앗이다. 인간에게 유희의 대상인 나무는 죽어서 베어져야 자유를 얻는다. 씨앗은 영혼이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물은 봄이 와서 풀려도 얼음 밑으로 흐른다. 새들이 찾아 목을 축일 수 없는 물이다. 그렇다고 얼음 밑으로만 계속해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얼음이 없는 따뜻한 양지바른 곳에 웅덩이가 생기면 새들이 찾아와 목을 축이고 목욕을 할 수 있게 잠시 숨을 고른다. 가끔은 겨우 비집고 나갈 만 한 돌 틈을 만나지만, 계속해서 흐른다. 흐르다 보면 너른 들을 지나 보에 막혀 힘든 상황도 있겠지만, 그 또한 차고 넘쳐 계속 흐를 수 있기에 자유를 찾아 무심히 흐른다.

흰 눈을 뚫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복수초가 돌을 병풍삼아 봄의 전령인 영춘화보다 먼저 꽃을 피웠다. 때를 같이 해 매화의 꽃눈은 곧 터질 듯 커다란 방울방울이다. 고된 시간을 이겨낸 봄의 정령이다.

겨울은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꿈을 꾸는 시간이다. 아직 한 겨울이지만 내 삶이 달달한 이유가 있다. 잘 생기지도 쓸 만큼 용돈을 주는 아빠가 아님에도, 모였다하면 늘 재잘거리고, 어깨를 붙이고 양 옆에서 번갈아 팔짱을 끼는 두 딸과 아들, 어떤 상황이든 이해해 주는 아내가 늘 옆에 있다. “술맛이 어떠냐?”. “아주 단데요” “오늘 하루가 인상적이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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