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살아가는 사람들
매일매일 살아가는 사람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0.02.2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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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이 지경인데 언어는 무슨 소용이 있으며, 글을 쓴다고 해서 위로가 되거나 해결할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절로 시름에 빠지게 합니다. 그때 새벽어둠을 밝히며 또 하루를 시작하는 시내버스 첫차의 출발이 아름답게 나를 일깨웁니다. 어둠 속에서, 봄을 재촉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름에 빠진 세상 사람들을 달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비는 어쩐지 더 축축합니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유난히 구슬프게 들리는 것은 도시 전체가 적막하고 쓸쓸하게 비어있기 때문이겠지요. 길가에서 한데 잠을 겨우 새운 덤프트럭이 힘차게 시동을 걸고 있습니다. 경유 타는 냄새가 새삼 반가운 것은 이 위기의 순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살아가는 사람들의 박동을 느낄 수 있다는 안도에 해당하겠지요.

코로나19가 창궐하고, 겨우 진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종교적 이유로 무너지면서 걱정은 온 나라와 온 백성을 뒤덮고 있습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두렵게 감추고 숨죽이며, 또 언어를 잃어버린 채 우리는 마음의 문을 닫아 스스로를 격리하면서 도시를 비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니 인류는 아직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정체를 모르고 있습니다. 발병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그 사이 창궐한 미디어를 통해 <위험사회>의 확산을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호모사피엔스의 과학은 아직 바이러스를 독립적 생명체로 정의하는 걸 망설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바이러스가 번식을 위해 대물림되는 유전체와 이를 둘러싼 단백질 외피로 구성된 아주 단순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정설입니다.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바이러스는 유전체의 대물림을 하기 위해서는 숙주인 다른 생명체 안으로 침입할 때 비로소 스스로를 재생산할 수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을 비롯한 언론과 인터넷 게시판은 코로나19 발병 이후, 그전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람들이 챙겨보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언어와 동작을 삼가고 있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틈타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사실만을 나열하는 맹목은 더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매일매일 살아가야 하는 뜨거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 그리고 세상을 지키며, 멈추지 않게 하는 사람들은 새벽 시내버스 첫차를 운전하며 위험한 도시를 여전히 순회합니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움직이며 사람을 실어 나르는 택시는 멈추기 직전의 도시를 살아있게 하는 핏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들도 위험하고, 그들도 크게 불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쉬는 날 없이 매일매일 위험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며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의사와 간호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등의 의료진은 세상의 심장박동을 멈추지 않게 하는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화급을 다투고 또 누군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아저씨의 먼지 가득한 마스크는 우리가 반드시 견뎌내고 이겨내야 할 용기의 흔적입니다. 밤새워 누군가에게 생명의 끈이 될 음식을 만들고, 두려움을 떨쳐내며 환자를 실어 나르는 소방관과 경찰관, 그리고 확산을 막고 진정을 위해 비상근무에 나서는 공직자들의 심장 역시 우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해주는 뜨거움입니다.

그 뜨거움을 나는 `마음을 구하는 힘, 구심력(求心力)'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구심력은 어떤 단체 따위를 한 덩어리로 뭉치게 하는 힘 또는 물체가 일정한 속도로 원운동을 할 때 원의 중심을 향하여 작용하는 힘을 뜻합니다.

코로나19로 한산해지는 도시를 보면서, 그동안의 우리가 얼마나 원심력에 치우치며 살아왔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은 여태 `물체가 원운동을 할 때 중심으로부터 바깥쪽으로 작용하는 힘'을 맹신하며 확장과 편리, 그리고 성장과 발전에 골몰해 왔습니다. 그 사이 단순하기 그지없는 바이러스 코로나19에게 찬탈당하는 지금, 어쩌면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감정 대신 차분한 이성을 되찾을 마지막 기회를 말하고 싶은 건 아닌지요. 오늘도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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