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萬波息笛)
만파식적(萬波息笛)
  • 한기연 시인
  • 승인 2020.02.0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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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한기연 시인
한기연 시인

 

뉴스특보에 촉각을 세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교민을 태운 전세기가 1월 마지막 날 오전 8시경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TV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1차로 368명이 이송되었는데 기내검사에서 발열증세를 보이는 18명은 병원으로 격리되었다고 한다. 나머지 350명은 아산과 진천에 나누어서 격리되었다. 처음에 두 지역은 격리수용지로 선정된 것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으나, `주민안전보장'으로 선회하여 받아들였다. 세계보건기구(WTO)는 이날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작년 12월 중국 우한시에서 퍼지기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인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영화로만 보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세계는 하나'라는 공동체감마저 든다. 이상기온 현상을 비롯해 무너진 환경 앞에서 세계 어느 나라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혹독히 치르는 중이다. 감염예방을 위한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값이 몇 배로 오르거나 품절 대란이다.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SNS 단체방이 며칠 전부터 뉴스를 전하느라 시끄럽다. 네 명이 개인 사정을 뒤로 한 채 무리하게 강행하는 여행을 앞두고 있어서 근심이 컸다. 각자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비타민주사라도 맞고 여행을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경제적으로는 위약금도 문제가 됐지만, 작년에도 북유럽으로 정했다가 무산된 적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꼭 가고 싶었다. 여행은 가기 전의 설렘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쁨인데 걱정뿐이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공항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SNS에 올려진 사진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했다. 생수통만한 페트병을 잘라서 뒤집어쓴 사람과 김장비닐봉지를 뒤집어쓴 중국 일가족의 모습이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우리도 김장비닐봉지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야?'하고 댓글을 달았는데 결코 웃어넘길 수 없었다.

얼마 전 즐겨보는 역사 프로그램에서 신라 전설상의 피리로 전해지는 `만파식적'에 대한 스토리가 나왔다. 신라 신문왕이 아버지 문무왕을 위하여 감은사를 짓고 추모하는데, 죽어서 바다 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합심하여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적의 군사는 물러가고, 병은 낫고 물결은 평온해졌다고 한다. 신문왕이 피리를 불자 전국을 공포로 휘감던 역병이 사라졌다. 아마도 신문왕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하늘에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피리를 불면 `만 가지 근심이 가라앉는 피리'란 의미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고 부르고 신라 국보로 삼았다고 전한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닌 끝에 손소독제를 사고 마스크 KF지수도 꼼꼼히 확인했다. 가방을 꾸리다 보니 그 어느 때보다 약이 많다. 공항은 어떤 모습일까? 과연 내가 비행기를 온전히 탈 수 있을까? 어깨도 쑤시고 목도 아파지기 시작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몸에 반응을 일으키고 있나 보다. 긴장을 이완할 수 있도록 두 팔 벌려 심호흡을 크게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침착한 대응이 필요할 때이다. 이런 시기에 신라의 전설 `만파식적'과 같은 불안감을 없애줄 피리는 마음에 달렸다. 전 세계인 모두가 한마음으로 뜻을 모아 헤쳐나가야 할 과제이다. 위급한 상황일수록 침착하게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우선 개인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철저한 위생관리와 예방 매뉴얼 준수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출국을 앞두고 공항에서 나를 보호해 줄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눈을 감고 누워서 음악을 듣는다. 마치 신라 신문왕이 불던 피리 소리처럼 들린다.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다. 모든 이의 시름도 눈 감으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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