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자업자득
검찰의 자업자득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11.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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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김학의 전 법무차관의 변호인은 “법과 정의의 원칙에 따라 판결해준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뇌물수수와 성접대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차관이 엊그제 무죄를 선고받고 나서 한 말이다. 그는 총 8개 혐의로 기소됐으나 3건은 공소시효 만료, 5건은 증거부족 판결을 받아 무죄 방면됐다.

김 전 차관은 지난 2013년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장에 수시로 초대돼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처음 검찰 수사를 받았다. 별장에서의 음란한 장면이 찍힌 동영상이 드러나고 여론이 악화하자 마지못해 착수한 수사였다. 검찰은 증거 불충분을 들어 무혐의 처리했고, 이듬해 두 번째 수사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후 검찰은 소극적 수사를 넘어 범죄사실을 은폐·축소했다는 의심까지 샀다. 검찰 조사를 받던 피해자들이 회유를 당하고 되레 혼줄이 나기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청와대가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났고, 김 전 차관 외에도 윤씨의 별장을 찾은 유력인사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모두 유야무야로 끝났다. 외압에 맞서 분투한 경찰 수사팀이 모두 전보·좌천된 사실까지 나중에 드러나며 검찰은 쥐구멍을 찾아야 했다.

검찰은 6년 만인 지난 3월 세 번째 수사에 들어갔다. 역시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의 권고를 받고 나서야 착수한 타율적 수사였다. 특수부를 꾸리고 검사 13명을 투입하는 의지를 보였지만, `기소혐의 모두 무죄'라는 참담한 결과에 봉착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판결을 두고 검찰에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6년 전 수사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어이없는 판결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자업자득인 셈이다. 1·2차 수사를 무혐의로 덮은 검찰이 3차 수사에서 기소로 전환한 대목부터가 어불성설 이라면 어불성설이다..

특히 성접대 등 공소시효 만료로 무죄가 된 혐의들에 대해서는 검찰로서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다.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이 윤씨로부터 지속적으로 성접대를 받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공소시효를 넘겨 단죄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이 1차와 2차 수사를 봐주기로 허송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앞서 김 전 차관에게 성상납을 하고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윤씨도 공소시효 만료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도 윤씨의 성접대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2013년 적절히 공소권을 행사했다면 당시 피고인이 적절한 죄목으로 법정에 섰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검찰이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법부의 훈계(?)는 검찰 입장에서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치욕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필요성을 검찰이 몸소 보여줬다는 비아냥도 터진다.

검찰은 그동안 특수부 폐지, 파견검사 복귀, 검사장 전용차량 이용 중단 등 자체개혁안을 발표했다. 피의자 공개소환과 포토라인 세우기, 피의사실 공표, 심야조사 등 수사 관행을 개선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김 전 차관의 파렴치한 행각이 무죄를 받을 때까지의 과정에서 드러난 검찰의 행태를 보면 이 정도의 개혁안으로 쇄신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검찰의 개혁은 판사로부터 공개적으로 무능을 지적받을 정도로 땅에 떨어진 현재의 위상에 대한 통렬한 반성에서 시작돼야 한다.

무죄를 받은 김 전 차관 측은 마치 억울한 누명을 벗기라도 한 듯이 `법과 정의와 원칙의 승리'라고 떠벌리고 있다. 국민들이 누구 때문에 이런 조롱과 모욕을 당해야 하는가. 검찰은 법과 정의가 무엇인지 그들을 따끔하게 일깨워야 한다. 검찰이 김 전 차관을 수사하며 조국 전 장관 가족을 수사할 때처럼 기민함과 집요함을 발휘했느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항소심에 조직의 명예를 걸고 오명을 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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