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한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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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9.11.11 2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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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2016년 8월 발의했지만 3년이 넘도록 책상 서랍에서 썩고 있는 법안이 있다. 바로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을 제한하는 내용의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민주당 유승희 의원 등 14명이 뜻을 함께 한 이 법안은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을 제한해 삼권분립의 헌법 질서를 지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유 의원은 이 법안의 제안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불구 현행 국회법은 국회의원이 국무총리, 국무위원(장관 등) 직을 겸직하면서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 등에서의 제한없이 활동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는 헌법 정신이 미치지 못한 사각지대로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의 권한(책임)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에 국회의원이 총리나 국무위원 등 국가공무원의 직을 겸하는 경우 국회 본회의에서의 의결권 행사와 상임위 활동에서 제한을 둬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고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정신이 완전하게 구현되도록 하려는 것'.

하지만 이 법안은 2016년 11월 상정된 후 당일 단 한 차례의 제안 설명과 검토 보고가 있은 후 지금까지 해당 소위인 국회운영위 책상 서랍에서 39개월 째 낮잠을 자고 있다. 현재 국회운영위 소속 의원은 여야 합쳐 모두 28명.

현재 국회운영위원회는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민주당 소속 의원 12명, 자유한국당 소속이 10명 등 모두 28명이 의원이 소속돼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도 소속 의원 중 하나다. 하지만 이들 의원은 모두 이 법안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이대로라면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인해 자동 폐기될 법안임이 분명하다.

14일 대법원 상고심 최종 선고 기일을 앞둔 구본영 천안시장이 변호인을 통해 이달 초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1,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아 시장직 상실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당연한 `제스처'다.

그러나 탄원서를 낸 사람들이 69명의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부적절한 처신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탄원서에 서명한 의원 중엔 문희상 국회의장도 있다. 탄원서는 재판을 담당하는 대법관 앞으로 제출됐다.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과 개개인이 입법기관인 국회의원 69명이 상고심 판결을 앞둔 주심 대법관에게 형사 사건 피의자에 대한 선처를 호소한 것이다. 탄원서의 내용은 더더욱 가관이다. 11일 일부 내용이 공개됐는데 `(구 시장에게 당선무효형을 선고한) 1, 2심 재판부의 판결을 `오심'이라고 노골적으로 지적하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담겨 있다.

`저(탄원서에 서명한 국회의원)는 제1심고 항소심이 정치자금법의 입법 취지를 간과하고 형식과 지엽적인 사항에 몰두해 법률의 전체 취지와 상식에 반하는 결론을 내리는 우를 범했습니다'. 이쯤되면 탄원이 아닌 간섭, 나아가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월권'이라 할 만 하다.

경실련이 이 탄원서를 낸 의원들을 겨냥해 이런 논평을 했다. “국회는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권과 임명 동의권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의원들의 탄원서 제출은 피감 기관인 대법관에 대한 압력행위이며 삼권 분립 정신을 훼손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다.”

견제와 감시는커녕 행정부와 사법부를 넘나들며 무소불위의 권력 기관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의 국회. 그 오만함을 심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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