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공간
배움의 공간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 승인 2019.10.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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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오늘 출근길은 익숙한 길이 아니다. 출장으로 처음 찾아가는 학교인데다 유난히 길눈이 어두운 탓에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운전을 수행한다. 별 탈 없이 도착한 학교 건물 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학교의 풍경이 친숙하다. 처음 온 학교가 분명한데 예전에 온 적이 있나? 순간 헷갈릴 정도다. 붉은 벽돌에 연노랑 페인트가 칠해진 직사각형 건물, 커다란 게시판이 낯설지 않은 중앙현관으로 들어서면 한결같은 교무실과 교실 배치가 길눈 어두운 나에게 안정감마저 준다. 네모난 교실에 칠판과 책상들도 별반 다름이 없다.

일을 마치고 오랜만에 의기투합한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SNS에 꾸준히 맛집 정보를 올려대는 친구가 추천한 카페다. 훤하게 넓은 실내에 밝은 색 테이블과 목재의자가 널찍널찍 놓여 있고 혼자 또는 여럿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벽에 붙은 테이블에서 노트북 모니터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한 사람, 옆으로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 두 사람, 책을 잔뜩 쌓아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는 여러 사람들. 그저 차와 음료를 마시던 카페는 일하거나 함께 책 읽고 토론하고 소통하는 곳이 되었다.

친구들과 허기질 만큼 수다를 떨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근처 작은 도서관에 들렀다. 커다란 책상에 둘러앉은 아이들이 책에 나오는 종이접기를 서로 알려주며 하고 있다. 정장바지에 와이셔츠를 입은 젊은 아빠는 도서관 바닥에 앉아 딸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을 읽어준다. 퇴근하자마자 아이 손에 끌려온 모양이다. 헤드셋을 쓰고 혼자 책을 읽는 학생은 흘러나오는 음악을 짐작하도록 교복 입은 어깨를 흥겹게 들썩인다. 학창 시절 도서관 벽과 기둥마다 붙어 있던 `정숙'이라는 표어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방금까지 있었던 카페보다 더 활기찬 모습이다.

기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세심하게 설계하고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다. 쇼핑몰에 들어서면 원래 필요했던 프라이팬 하나를 사러 왔다가 이내 마음의 방어벽이 허물어져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집어들게 되도록 말이다. 카페와 도서관 같은 우리 주변 일상의 공간들도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

어쩌면 학교는 가장 변화가 더딘 공간인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학교는 표준설계와 빠듯한 예산, “학교가 다 그렇지 뭐.”라는 생각으로 공식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학교의 공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더 나은 장소를 만드는 데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배움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대한 관심 말이다.

파커 파머는 배움이 잘 일어나는 공간에는 개방성, 경계, 환대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에 열려 있고, 예측할 수 없는 일도 환대로 맞이할 수 있는 교실. 서로에게 열려 있으면서도 배움의 공간 밖으로 탈출하지 않도록 경계를 만들어 낼 때 배움이 잘 일어나는 공간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비슷하기만 한 학교 공간을 아이들 숨결이 살아있는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식이 아닌 새로운 관점과 변화의 시도가 필요하다.

며칠 전 아이들이 직접 참여해서 중앙현관을 새롭게 꾸민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중앙현관 널따란 소파에 책 한 권을 놓고 나란히 엎드려 책을 읽던 아이들은 이 공간이 있어 수업이 다 끝나고도 집에 갈 생각을 않는다고 말한다. “저희 만날 여기서 책 읽어요. 원래는 제가 책 안 좋아했거든요.” 목젖이 보이도록 소리 내어 웃던 아이들 모습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학교라는 장소가 우리의 행동과 존재를 변화시키는 정도를 그동안 과소평가해왔던 건 아닌지. 교실을 어떻게 만들어야 아이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협력을 경험할까? 어떤 공간에서 더 잘 배우고 성장하는가? 학교가 어떤 공간일 때 아이들은 행복한가?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학교의 공간이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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