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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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9.09.23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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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올해 여름 극장가를 달군 이상근 감독의 `엑시트'(주연 조정석, 윤아)가 관객들에게 준 교훈은 비상 탈출구 확보의 중요성이다.

극 중 주인들은 재난 상황에서 긴급 대피처인 옥상으로 가려다 옥상 출입구가 잠겨 있는 바람에 낭패를 당한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된다. 주인공들은 매번 대피하려던 옥상의 비상구가 잠겨 있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다.

옥상 출입문 폐쇄의 심각성을 들춰낸 이 영화가 결국 정부 당국자들을 움직였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국토부 건축안전팀은 최근 영화 엑시트 개봉 이후 자물쇠로 잠긴 수동 개폐 옥상 출입문으로 인해 인명 피해의 문제점이 부각되자 관련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2016년 2월 개정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30세대 이상 공동주택은 옥상 출입문 자동개폐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시행 이전 허가를 받은 공동주택은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라 대부분 자동개폐장치가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을 위험에 빠뜨린 16층 이상 다중이용건축물은 자동개폐장치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 화재 등 재난 상황 시 대피 공간인 옥상을 전혀 활용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16층 이상 건물과 문화·집회·종교·판매시설 등 용도로 사용되는 바닥 면적 합계 5000㎡ 이상 다중이용건축물을 옥상 출입문 자동개폐장치 의무 설치 대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또 자동개폐장치 의무 설치 대상을 기존 3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서 연 면적 1000㎡ 이상의 공동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 등)으로 변경할 예정이다. 새 규정이 적용되면 비상구 자동개폐 장치 의무 설치 대상 건축물이 늘어나 인명 피해를 줄일 것으로 국토부는 예상하고 있다.

실제 옥상 비상구 개방의 중요성은 최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례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2017년 12월 29명이 숨진 이 화재 사고 당시 사망자들 다수가 6층 옥상으로 향하는 비상구 앞에서 발견됐다. 당시 옥상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1971년 서울 대연각 화재 사고 때도 옥상으로 탈출하려던 사람들이 많이 희생됐다. 163명이 사망한 대연각 화재 당시 옥상 비상구 앞에서 옥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람은 20여 명에 달했다. 역시 옥상 비상구가 잠겨 있었다.

이번 국토교통부의 대응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다. 소방청 역시 제천 화재 참사를 계기로 관련법을 강화해 올해부터 다중이용 업소에서 비상구 폐쇄 시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비상구 앞에 장애물을 적치해도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고 폐쇄, 잠금 행위를 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처벌을 강화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시 건축물 관리자나 아파트 등 입주 공동체의 의지다. 아무리 법이 강화되더라도 정작 다중이용시설이 나 아파트 단지에서 관리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법규를 따르지 않는다면 만약의 사고 시 인명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실제 지금도 비상구 개방 의무 건축물의 거지반 이상이 이런저런 이유로 옥상 탈출구를 막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구를 막아 사람을 죽게 해놓고 고작 1000만원의 처벌을 받는데 그친다면 유족들은 얼마나 억울할까.

자동개폐 장치 의무화 확대와 함께 더욱 강화된 법령의 정비가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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