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분석 Ⅲ - 국화와 칼
일본인 분석 Ⅲ - 국화와 칼
  •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 승인 2019.09.1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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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일본을 한 번쯤 다녀온 사람들은 대개 일본인들의 질서의식, 청결, 검약, 매너, 높은 기술력 등을 칭찬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어, 우리 국민성이 아직은 멀었어, 일본을 더 배워야 해'라고 말을 맺는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은 일본인들의 어른과 상사에 대한 복종심에 경의를 표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좋은(?) 국민인 일본이 아시아 전체를 피로 물들였으면서도 매너 있게 사과하지 않고 강제징용과 성노예의 사실을 부인하고 오히려 경제보복, 혐한발언, 평화헌법 개정 등으로 우리에게 무례한 행동을 할까,

이 의문을 나름 풀어준 책이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 Benedict)가 쓴 `국화와 칼'이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미국 전쟁정보국(OWI)은 문화인류학자에게 적국인 일본과 일본인의 국민성에 대한 연구를 요청한다. 베네딕트는 2년의 연구 끝에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지금까지도 일본에 대한 이해를 위한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연구 방법론적으로는 이 연구를 기점으로 한 국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 국민의 인성(personality)을 알아야 한다며 `국민성 연구'가 봇물처럼 쏟아지게 되었다.

서늘한 가을에 피어나는 국화를 청결하고 고귀하다고 좋아하는 일본인들, 그들은 겸손하고 예의 바르지만 마음속에는 무서운 칼을 지니고 있다는 뜻에서 저자는 보고서의 제목을 `국화와 칼'로 지었다고 한다. 일본 왕실의 문양으로 상징되는 국화는 아름다움과 평화로운 질서를 상징한다. 반면 칼은 호전적이면서 파괴적인 폭력과 전쟁의 세계를 뜻한다. 베네딕트는 이 책에서 `국화'와 `칼'이라는 메타포의 의미 내용을 매우 중층적으로 사용했는데 국화와 칼을 모순이 아니라 일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관된 가치체계로 포용했다.

`국화'는 차 한 잔을 마시는 데도 도(道)를 운운하는 일본인의 섬세한 미학적 세계를 상징한다. 반면 `칼'은 잔인하게 상대를 살상하는 야만적인 형태를 뜻한다. `국화와 칼'이 내포하는 사람의 이중성은 속마음(혼네)과 바깥표정(다테마이)이 다르다는 것을 일본인들 스스로도 자기네 특성으로 인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나 중국 문화에서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비열한 것으로 여겨 왔다.

베네딕트는 일본인들의 행동적 특성을 이중성과 기회주의성으로 압축했다. 일본인들의 이중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있고, 유순하면서도 분개를 잘하고,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다.'

일본인에게는 종교적이건 윤리적이건 어떤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에 삶의 목적도 윤리도 상황에 의존한다. 따라서 생존을 위해서라면 잔인한 전쟁도 불사하고, 반대로 굴욕적인 복종도 마다하지 않는다. 베네딕트는 그의 저서에서 일본인들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가미가제식 자살도 서슴지 않던 일본인들이 천황의 패배 선언 이후 그들은 미국에 온순한 강아지의 모습으로 돌변하였다.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일본인들은 매우 호의적으로 패전의 결과 일체를 받아들였다. 미국인들을 따뜻한 인사와 웃음으로 맞아들였고 손을 흔들어 환영했다. 이들은 침울하거나 분노하고 있지 않았다….”

베네딕트는 그의 보고서 말미에 일본인의 기회주의적 특성에 대해 한 가지 예측을 한다. “일본은 평화로운 세계가 지속하면 평화주의에 헌신하겠지만, 세계열강이 전쟁 준비에 돌입하는 순간 무장 진영으로 뛰어들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제법 북적이는 청주 시내 일본계 상점 앞을 지나치며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소련에 속지 말고, 미국을 믿지 마라, 일본이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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