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와 불교
원불교와 불교
  •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 승인 2019.09.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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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박경전 원불교 청주상당교당 교무

 

나는 원불교 교무라는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며 생활을 한다. 교도들을 만날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원불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항상 내게 똑같은 질문을 던지곤 한다. 도대체 원불교는 불교와 어떤 관계인지를 묻는 질문이다.

불교의 한 종단인지, 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인지를 묻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원불교를 처음 만났던 때인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원불교에 대한 인지도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졌기에 조금은 슬펐다.

이제껏 참 많은 대답을 했다. 질문을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질문을 했는지 살펴보고 그것에 맞추어 다양한 대답들을 들려주었다.

그 대답들의 골자는 이러하다.

이천여년의 시간 터울을 두고 두 사람이 같은 진리를 보았다.

같은 진리를 보았으니 같다고 하면 같고, 다른 두 사람이 보았으니 다르다고 하면 다르다.

2500여년전 인도의 석가모니 부처가 진리를 깨달았고, 104년 전 한국의 소태산 대종사가 진리를 깨달았다. 진리는 하나이기에 같은 깨달음이다.

같은 깨달음이지만 다른 두 사람이고, 다른 시대였기에 그 표현은 분명히 달랐다.

먼저 깨달은 석가모니불의 진리는 오랜 시간과 공간과 사람의 조화로 더 깊어지기도, 더 수려해지기도 혹은 왜곡되어지기도 하였다.

나중에 깨달은 소태산 대종사의 진리는 먼저 깨달은 석가모니불의 진리와 다른 모든 종교와 사상들의 깨달음을 보감 삼아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였다.

같은 진리를 보았지만 강조한 부분은 달랐다.

먼저 깨달은 석가모니불은 `일체가 다 고통이라'(一切皆苦) 하여 그 고(苦)를 끊자 하였고, 나중에 깨달은 소태산 대종사님은`온통 은혜라' 하여 그 은혜를 갚자 하였다.

모두가 다 고통과 모두가 다 은혜가 어떻게 같은 진리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일체가 다 고통이라는 것은 무엇도 고정된 것이 없는데 우리가 집착을 할 때에 고통이 생겨나기 때문에 그 집착을 끊어내자는 것에 본의가 있는 것이다. 즉, 그 집착을 끊어내고 고통을 없애면 모두가 은혜인 세상인 것이다. 모두가 은혜는 근원적 은혜를 말한다. 고통의 원인인 집착도 그 근원을 살펴보면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지이기 때문에 그것도 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은혜를 파악하고 보은하는 삶을 산다면 오히려 집착을 놓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 수 있다.

컵에 물이 딱 절반이 남아 있다.`절반밖에 안 남았네'와 `절반이나 남았네'처럼 똑같은 물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절반 밖에 안 남았든 절반이나 남았든, 우리가 할 일은 컵의 물을 시원하게 마셔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그것이 온통 고통이든 온통 은혜이든 석가모니 부처와 소태산 대종사처럼 진리를 알고, 진리를 활용하고, 진리와 하나가 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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