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구나무집
둥구나무집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 승인 2019.08.06 1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팀장

 

포털사이트에 이따금 좋아하는 물건을 모으는 마니아가 소개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던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좋아하는 물건을 모아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이야기를 통해 공유하는 사람들, 수집한 물건을 주제로 색다른 기획전시를 열고, 전문 박물관을 만들어 많은 사람과 공유의 시간을 갖는다. 저장강박증이라 폄하하는 부정적 평가를 넘어 더한 창조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위대한 사람들이다. 쉽게 얻어 쉽게 버리는 시대에 돋보인다. 처음에는 우연하게 얻은 작은 물건에서 시작해 완성체를 구성하기 위해 어려운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유일무이한 것을 구하는 기다림의 시간까지 즐기며, 완성해 가는 사람들.

나 또한 좋아하는 물건을 꽤 모으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마니아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종류의 것들을 많이 모아 정리하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꼭 좋아서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을 모아 활용한다. 커다란 돌을 받침대 삼아 지짐이와 부침개를 만들어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검고 기름이 밴 둥그런 무쇠 철판과 뒤집개, 쇠죽을 푸던 쇠죽바가지와 곰부랏대, 소를 부려 뒷밭을 갈던 할아버지, 아버지의 쟁기, 작은 집에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물건이기에 한 자리씩 차지한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한 가족의 시간이기에 간직하고 되새기는데 한몫을 한다. 옛날 살던 집을 재현 하고 싶은 생각마저 간혹 갖는다.

“뉘 집 자손인가?” “둥구나무집 넷째입니다.” 어릴 적 둥구나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우리 집을 그렇게 불렀기에 답변이 그러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둥구나무는 내가 살던 집 앞 개울가에 있던 커다란 팽나무였다.

지금은 아파트가 올라간 자리에 참나무가 빼곡히 숲을 이루고 있었고, 집과 참나무배기 사이로 논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의 초등학교 자리다. 논과 집 앞을 도랑이 가르고 있었다. 그 도랑가에 커다란 둥구나무가 있었다. 얼마나 컸던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속에 그 나무에 늑대가 올라가 울었다나. 그래서 우리 집은 번지수도 모르지만 둥구나무집이라면 동네 어르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통, 번지수도 없이 `대추나무집', `은행나무집', `소먹이는 집'이라고 불렀던 때였으니 그러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실과시간에 상처 난 곳에 바르는 의약품을 적어낼 때 `빨간약'이라고 적어내었던 시절이니, 주소가 생각이 안 나 `둥구나무 집'이라고 적어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인이 박혔다. 그런 둥구나무는 집 앞 도랑을 덮어 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베어졌다.

전에 살던 집은 허물어지고 없지만, 우물은 남아 제 기능을 하고 조금은 변했지만, 터무니는 남아 있다. 가족이 대를 이어 살던 터를 조금이나마 되살리고 싶어 아내와 상의 끝에 집안에 팽나무를 심기로 했다. 아이들이 덜 익은 열매를 대나무로 만든 딱총의 총알로 썼던 팽나무는 단맛이 강한 열매가 달리는 나무이다. 그래서 많은 새들이 날라든다. 선비들이 팽나무의 강인함 때문에 정원에 심었던 나무 중 하나이기도 하다. 회화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와 더불어 장수나무로 불린다. 오랜 시간 동네의 이야기를 담았고, 한 자리를 지킨 큰 나무이다. 나무의 재질은 강하면서 물푸레나무처럼 가벼워 마상이나 논에 물을 퍼 넣을 때 쓰던 용두레로 쓰여, 인간 삶에서 뗄 수 없는 긴밀한 자재였었다.

나무 한 그루 심는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을 모으고, 이어가고자 하는 집착이다. 할머니 가슴에 머리를 파묻고 듣던 옛 이야깃거리의 단골 소재였던 둥구나무는 아니다. 그렇지만, 대를 이어 가족을 이루고 함께한 추억을 서로의 가슴속에 녹이고 꺼내어 박장대소하며 즐길 수 있는 웃음이 가득한 집의 오래전 새로운 가족이다. 둥구나무는 들어주고 내어주는 나무이다. 그래서 오랜 시간 한자리를 지키는 나무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