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향기
그날의 향기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9.07.1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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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초복이 지났다. 입술에 묻은 밥알도 무겁다는 삼복더위가 시작됐다. 옷 속을 뚫고 들어온 볕은 온몸을 핥고,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이 괴춤에 머문다. 삼복더위 때면 퇴화한 기억의 끄트머리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입가엔 미소가 머문다.

학창시절, 이웃집 남매와 우리 삼 남매는 무주구천동으로 휴가를 떠났다. 덕유산능선을 따라 내려오는 구천동계곡, 당시 얼마나 먼 거리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고 사전정보도 없이 단지 명소란 이유만으로 무작정 떠났다. 연일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삼복더위, 버스를 몇 번을 갈아타면서 겨우겨우 도착했다. 민박도 펜션도 흔하지 않던 그때 숙박은 텐트로 했다.

울창한 숲과 청정한 풍광에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둥지 틀 곳을 정했다. 텐트를 치려고 서덜에 야전삽으로 골을 만들고 자갈을 골랐다. 그때 펑퍼짐한 아낙이 다가와 자릿세를 지불하란다. 개인사유지이기 때문에 자릿세를 내야 한다는 것. 분명 서덜임이 틀림없는데 막무가내인 아낙은 한 치 양보도 없었다. 받으려는 자와 주지 않으려는 자의 승강이를 벌이다 끝내 우린 지불했다. 자릿세를 받고 쓴웃음을 지며 자리를 뜨는 아낙의 뒤통수에 대고 우린 속으로 분함을 쏟아냈다.

여름을 삼킨 구천동은 천상이었다. 양파, 감자, 호박만으로도 성찬을 만들었다. 카레, 자장, 라면은 피서지에서 최고일품요리였다.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 구름 위에 마음을 얹어놓고 행복을 만끽했다. 그렇게 구천계곡 산허리를 돌아치는 자연바람에 매료되어 환상적인 시간을 보내던 중 변수가 생겼다. 이튿날 늦은 오후, 바람비가 거세게 몰아치면서 우왕좌왕 피서객 모두 도망치다시피 짐을 꾸려 대피했다. 급한 마음에 밤에 등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행여나 비상용 초가 젖을까 봐 수건으로 정성스레 꼭꼭 싸 비닐봉지에 담아 대피를 했다. 그날 밤, 초가 젖을까 애지중지한 사실에, 서로 어이없는 행동에 박장대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비로 인하여 하루를 더 머물렀고 경비는 바닥을 보였다. 계획 없는 일정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겨우겨우 늦은 오후 대전역에 도착했으나 빈 주머니였다. 신용카드나 온라인이 널리 보급돼 있지 않았던 터라 집에까지 돌아가는 길이 막막했다.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역전에서 다섯 명 모두 구걸 아닌 구걸을 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사람들에게 사정이야기를 하고 도움을 청했다. 어떤 이는 해를 끼칠까 외면하기도 하고, 애써 시선을 피하면서 먼 하늘을 보며 딴청을 피우기도 한다. 그러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부끄럽고 긴장된 탓에 손바닥은 물론 겉옷까지 축축하게 배어 나오는 땀은 목소리까지 떨리게 만들었다. 왜 그리 처량하던지 자신감도 용기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동전이 손바닥 가득 모이기 시작했고 나름 위기극복에 뿌듯했다. 모인 돈은 상상외로 많은 금액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허기를 달래려고 역전마당 모퉁이에 또 자리를 펴 라면을 끊이기 시작했다. 코펠 가득 끊어 넘치는 라면국물, 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로 오감을 자극하는 라면 냄새는 황홀함에 빠져들게 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간의 역경은 온데간데없다. 빙 둘러앉아 한 젓가락 집어 올려 후루룩 빨려 들어가는 그 맛, 세상 그 무엇하고 바꿀 수가 없었다. 그 어떤 성찬의 진미(珍味)하고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맛이었다.

옛말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했다. 험난한 고행이었지만 서로에게 덜어줄 `인심'이 있다는 것이 살만한 세상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향기로운 추억과 맛, 그날의 그 향기는 아직도 생생하게 내 곁에 머문다. 떠나지 않는 그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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