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탓인가, 공약 덕분인가
공약 탓인가, 공약 덕분인가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9.07.02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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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학교 현장이 발등에 떨어진 불로 혼란을 겪고 있다.

일선 학교는 3일부터 시작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대체 급식과 단축수업을 해야 할 판이고, 대학가는 8월 1일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자사고 재지정 결과를 두고도 고무줄 잣대라며 반발하는 학부모들과 공교육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진보교육감 간 책임 공방이 팽팽하다.

일련의 모든 정책 중심에는 학교의 주인인 학생이 있어야 하는 데 눈을 씻고 봐도 학생이 없다.

노동자의 총파업이 이어질 때마다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급식 차질을 걱정하면서도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예고한대로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총파업에 들어간다.

당연히 급식과 돌봄교실, 교무행정 등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충북도교육청이 파악한 파업 참여 인원은 전체 대상 5784명 중 841명. 파업 첫날인 3일 도내 113개 학교가 중단된 급식 대신 빵이나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지난 1일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17개 시·도교육청 부교육감 회의를 열어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총파업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지만 급한 불을 끄는 수준에 그쳤다.

연대회의가 정부를 향해 요구하는 것은 기본급 인상 및 각종 수당 지급 시 정규직과의 차별을 해소해 줄것과 문재인 정부 임기 내 `공무원 최하위 직급의 80% 수준'의 임금 인상이다.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 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집에 담긴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차별없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비정규직 차별금지 특별법 제정 등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적극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하고, 공정임금제를 적용해 대기업-중소기업 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대졸-고졸간 임금격차(중소기업 61.4%, 비정규직 53.5%)를 80% 수준으로 축소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공약을 지키라는 노동자들과 공약 이행이 어렵다는 정부 사이에 학생들만 배를 굶어야 하는 상황이다.

비정규직의 숫자가 늘어나고 학교 현장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이쯤이면 정부가 나서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학교 현장 안정화에 힘을 보탰어야 한다.

강사법 시행을 앞둔 대학가도 사면초가다.

하계방학이지만 방학이 없다.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강사법 탓에 학칙 개정부터 수백명에 이르는 시간강사 채용절차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사를 보호하겠다는 법에 정작 강사가 없는데 좋은 정책이니 일단 밀어부치는 교육당국과 맞서기에 대학은 너무 미약하다. 시범 운영을 거쳐 문제점을 보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대학의 볼멘 목소리도 대선 공약이었으니 묻힐 수 밖에.

자사고를 둘러싼 문제도 공약이라는 발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주 상산고는 79.61점을 받고 전북교육청 커트라인(80점)에 미달해 폐지돼야 할 운명에 놓였고, 민족사관고는 79.77점을 받아 강원도교육청 커트라인(70점)을 넘겨 재지정됐다. 교육감 고유권한이냐, 고무줄 잣대냐 말이 많지만 이 와중에 충북에 자사고가 없어 다행인지 모르겠다.

노동자와 강사들에게 희망고문을 하게 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탓을 해야 하나. 어찌됐든 우리 사회가 학생들에게 밥 대신 빵을 손에 쥐어 주었으니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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