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장삿속
트럼프의 장삿속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9.07.01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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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
이재경 국장(천안)

 

뼛속까지 장사꾼. 이젠 세계를 놀라게 하는 정치가가 됐지만, 예나 지금이나 새삼스럽지도 않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북한 땅을 밟으며 세계인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는 한국에서도 장사꾼 역할을 잊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그는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북미 간 역사적 회동에 앞서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국내 재계 총수들을 만났다. 표면적으로는 주한 미국 상공회의소가 주관한 자리였으나 사실상 그가 `목적'을 갖고 마련한 자리였다.

국내 재벌 그룹의 총수들 20여명이 자리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삼성, 현대차, SK, 롯데, CJ, 두산 등 6개 그룹의 이름을 거명하며 해당 그룹의 총수들을 일으켜 세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공통점이 있다.

특히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 회장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연방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신 회장을 소개하며 “(미국에서) 훌륭한 많은 일을 성취했는데 지금 제 옆에 있어 말을 해줘야 할 것 같다”면서 “지난달 신 회장이 워싱턴을 방문했고 3조6000억원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실제 롯데는 지난 5월 9일 미 루이지애나 주 레이크찰스에 총 사업비 31억불을 투자해 에틸렌 100만톤 생산 능력을 갖춘 대규모 석유 화학 단지를 준공했다. 2016년 착공한 이 단지는 축구장 152개 크기(약 102만㎡, 31만 평 규모)로 한국 화학 기업 최초로 미국에 건설한 단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이 단지가 준공되자 즉각 신동빈 회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롯데의 레이크찰스 화학 단지 준공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가장 큰 규모의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였다.

신 회장 외에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켜 세운 다른 다섯 명의 그룹 총수들 역시 미국 현지에 자동차 산업단지, 세탁기 공장 등 대규모 투자를 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을 받지 않은 다른 그룹의 총수들은 졸지에 `머쓱한'처지가 됐다. 간접적으로 미국에 투자하지 않은 한국 기업의 오너라는 낙인을 받은 셈이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사실상 이날 한국 재벌 총수들에게 `더 많은'대미 투자를 강요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보복이 뒤따를지 이미 미중 무역 분쟁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켜본 터. 이날 자리한 재벌 총수들이 속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걱정되는 것은 우리 국내 현실이다. 미국에 수천억, 수조 원을 투자해 산업단지와 공장을 짓는 우리 기업들이 정작 국내 투자는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LG의 사례처럼 국내에 있던 기업마저 철수하고 국외로 생산 기지를 옮기는 대기업도 있다.

사상 최악의 실업률에 청년 일자리가 없어 아우성치는 암담한 현실. 남의 나라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메리카 퍼스트'만 외치는 트럼프의 장삿속에 화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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