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
모정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9.06.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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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응급실보호자 대기실이다. 오십대 초반의 여인이 잠시도 앉아있지 못하고 응급실 문틈을 초조하게 들여다보기를 반복한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부모 속을 태운다고 원망하는 말 속에 걱정이 가득이다. 오토바이 사고로 많이 다친 것을 형이 데리고 왔단다. 잠시 후, 응급실 문이 열리고 보안요원이 몸집이 마른 중년의 남자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보호자인 노모와 함께 대기실에 부려놓듯이 두고 간다. 머리에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였다.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정신이 들면 가시라는 말을 남기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뒷모습이 씁쓸하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남자를 작은 체구의 노모가 부축해 의자에 눕힌다. 술을 얼마나 마시면 저렇게 될까. `술'자만 나와도 몹시 예민해지는 내 표정이 먼저 일그러진다. 남자는 다정하게 달래는 노모의 만류에도 차가운 바닥으로 내려와 내 집 안방처럼 거리낌 없이 뒹군다. 행색은 초라하고 주사가 심해 말이 꼬인다.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노모는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이 연약한 몸집이다. 얼마나 속이 상할까. 자식의 흐트러진 모습에 가슴 치며 넋두리라도 할 줄 알았다. 나무라지 않는다. 혼자 힘으로 일으켜 세울 수 없으니 어린 자식 대하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기도 하고 손을 비벼주며 왜 이리 차가우냐고 안쓰러움에 애를 태운다. 자식이 아니라 원수라고 한탄하던 학생 엄마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말문을 닫고 조용하다. 똑같이 나이 든 자식을 데리고 응급실에 왔는데 모정의 높낮이가 왜 이리 다른가.

큰딸이 손가락을 다쳤다. 저 혼자 시작한 사업을 키워보려 고심하는 아이다. 작업 중에 공업용 재봉틀 바늘이 검지를 관통해 빠지질 않는다고 울며 전화를 했을 때 얼마나 놀라고 아프냐는 말보다 먼저 조심성 없는 아이를 탓했다. 응급실로 향하면서 통증이 심해 우는 걸 보며 마음은 쓰리고 아팠지만 따듯하게 위로를 해주지 못했다. 만취한 아들을 끌어안고 다독이는 노쇠한 그의 어머니를 보며 나는 엄마의 자격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란 걸 느낀다.

술에 의지해 인사불성인 사람이라면 삶에 대한 열정도 찾아보기 힘들 터다. 희망 없이 늙어가는 자식을 지켜보며 오랜 세월동안 염려하고 근심하는 마음이 이를 데 없이 컸으리라. 보호자 대기실에 있는 많은 사람이 횡설수설하는 남자를 보고 눈살을 찌푸려도 어머니는 오로지 찬 바닥에 누워있는 자식 곁에서 탈이 날까 걱정하는 마음뿐이다. 자식이 경우에 어긋나는 짓을 하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무조건 자식 편에 서서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진정 어머니의 마음인가.

딸이 치료를 받고 밝은 모습으로 응급실을 나왔다. 술에 취해 머리를 다친 중년의 남자와 아무래도 중환자실로 가야 할 것 같다는 고등학생보다는 작은 상처지만 응급실에 머문 세 시간은 가슴이 타들어가는 지옥이었다.

자식을 대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고 모성의 본질마저 다를까. 희생이 물거품이 되고 희망은 눈물 속 무지개로 사라져도 오로지 자식을 중심으로 두는 어머니의 삶이다. 어머니라는 말이 참으로 쓰디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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