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도발
공주의 도발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6.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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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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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단어를 생각하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그 이미지는 대부분 자라면서 좁게는 가정에서 넓게는 학교와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이미지다. 정형화된 프레임에 고착된 이미지를 벗어나는 이야기나 행동은 낯설고 어색해서 반감이 먼저 들기도 한다.

이렇듯이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이미지를 주입받고 지배 속에 있지만 모든 것이 태초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간혹, 이런 이미지나 생각을 깨려고 하는 도발자들이 시대마다 나온다. 철학자와 문학가들이 그랬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내뱉은 부스러기로 살아가면서 진보와 더 나은 삶을 꿈꾸는지도 모르겠다.

`공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그림책이 있다. 공주는 아름다웠으며 비싸고 좋은 옷들이 많은 화려한 성에 살고 있다. 그녀는 곧, 왕자와 결혼도 약속되어 있다. 그러나 그림책 첫 장의 왕자 모습이 삐딱하다. 공주에게 구애하는 여느 왕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한 손에 테니스 라켓을 어깨에 올리고 있고 표정은 시건방적이다.(상상해보시라) 목에는 황금 메달을 하고 있으며 신발은 어릿광대의 신발을 신고 있다.

어느 날, 용이 나타나서는 성을 모두 부수고 뜨거운 불길을 내뿜어 공주의 옷을 몽땅 태워 버린다. 심지어 왕자까지 잡아간다. 공주는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다. 성도, 자신을 아름답게 꾸며주던 화려한 옷도, 그리고 결혼을 약속한 왕자까지 말이다. 이쯤 되면 고정관념 속의 공주는 구해줄 다른 왕자를 기다리거나 울고 있을 테지만 용감한 공주는 용을 뒤쫓아가서 왕자를 구해 오기로 한다. 옷이 몽땅 타버린 성에서 발견한 커다란 봉지를 뒤집어쓴 공주. 겉모습은 초라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용을 물리치고 왕자를 구하고 말겠다는 투지의 여전사 모습이다.

이야기의 마지막이 일품이다. 공주는 폭력이나 힘으로 용을 상대하지 않는다. 물론 그래서도 안 되는 상대이긴 하지만. 지혜와 용기,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용을 이기고 만다. 그러나 구해 준 왕자는 여전히 거만한 표정으로 공주에게 말한다. “가서 진짜 공주처럼 챙겨 입고 와!” 그림책 안의 왕자 모습은 첫 장의 모습과 변함이 없다. 심각한 표정으로 있던 공주도 한마디 한다. “그래 로널드, 넌 옷도 멋지고 머리도 단정해. 진짜 왕자 같아. 하지만 넌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야!” 이렇게 해서 공주는 왕자와 결혼하지 않는다. 영어 원문을 찾아보니 “you are a bum(넌, 나쁜 놈이야!)”으로 되어 있다. 통쾌한 말이다. 왕자를 다독이고 결혼한 후에 왕비가 되어야만 한다는 프레임을 공주가 깨 주었다.

열린 결말로 끝나는 『종이봉지 공주 』이야기는 많은 여운을 남긴다. 성 평등 동화로 읽는다면 이것 역시 프레임에 갇힌 생각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와 고마움,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함께 숙고 되는 이야기다. 우리 주위엔 왕자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 가깝다는 이유로, 혹은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태도와 폭력 앞에 `늘 그래왔으니까,' `지나고 나면 괜찮아지니까'라고 생각한다면 현실판 가스라이팅(gaslighting) 일지도 모른다. 우리, 살아온 시간이 많아 뼛속까지 고정관념으로 차 있더라도 한 번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뭘까'생각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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