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후보자가 직접 후원금을 받았다면
합법적인 뇌물 통로 열어주는 것이다” 반박
1심 무죄 판결 수뢰후부정처사 혐의도 거론
“돈 받은 것 때문에 감투 준 것 아니냐” 추궁
지난 8일 대전고등법원에서 열린 구본영 천안시장(사진)의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구본영) 측과 벌인 날 선 공방이 주목을 받고 있다.
재판부가 검찰을 대신해 공소 사실을 추궁하는 경우가 드문데다 1심 재판부에서 무죄로 인정한 수뢰 혐의 부분에 대해서도 이를 뒤집는 듯한 지적을 해 향후 공판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대전고법 등에 따르면 구 시장에 대한 항소심은 제1형사부(재판장 이준명 부장판사)의 심리로 오후 4시부터 5시 10분까지 70여 분간 진행됐다. 원고와 피고 측의 항소 요지 진술과 신원 확인 절차 등에 이어 심리에 들어간 재판부는 약 20여 분 간 구본영 시장에게 큰 줄기로 예닐곱 가지의 질문을 던졌고 변호인 측의 변론을 반박하는 취지의 몇 가지 지적을 했다.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김병국씨에게 2000만원을 받은 것)와 관련해 구 시장 측 변론에 대한 재판부의 지적이다. 재판부는 구 시장 측 변호인이 “피고가 후원회 회계 책임자를 통해서 후원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법률적, 논리적 이유가 없고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자 “기부자와 (후원회) 지정권자의 직접 접촉은 뇌물이 될 수 있어 직접 접촉을 방지하고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입법 취지”라고 반박했다. 이어 “지정권자도 후원금을 직접 받는다면 뇌물을 합법적으로 열어주는 것이다. 후원회 취지에 비춰 (지정권자가 직접 받도록 한 것이) 양립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자금법 부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이 옳았다는 취지의 언급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재판부는 또 구 시장이 자신에게 2000만원을 준 김병국씨를 천안시체육회 상임부회장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재판부는 “처음 만난 사람(김병국)에게 꽤 많은 돈을 받았는데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나?”라고 구 시장에게 물었고 “2000만원을 받은 것 때문에 체육회 부회장직과 시장직 인수위 자문위원 직을 준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구 시장은 이에 대해 “선거법에 의한 후원금을 주는 줄 알고 받았다. 김씨를 임명한 것은 지역 유지이고, 체육계에서도 김씨를 환영한다고 생각해 임명한 것이지 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재판부의 이 질문은 1심에서 무죄로 인정한 수뢰후부정처사 혐의(2014년 천안시장에 당선된 구 시장이 선거 때 자신에게 2000만원을 줬던 김병국씨를 천안시체육회 부회장에 임명한 것)를 다시 짚어보겠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어 구 시장 측에 압박 요인이 될 전망이다.
재판부는 이밖에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구 시장이 돈을 돌려줬다 한 말이 거짓으로 나타났음을 지적했으며, 2010년 지방선거 때 구 시장 측이 쪼개기 후원금을 받고 현재 측근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사실을 들춰 내기도 했다. 모두 구 시장 측에 불리한 정황이다.
이날 재판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재판부가 공소장에 적시된 내용을 면밀히 살펴 매우 꼼꼼하게 심리에 임한 것으로 보인다”며 “재판부가 의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공정하게 재판을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 시장에 대한 다음 공판은 6월 26일 오후 3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천안 이재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