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의 멋
혼술의 멋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9.04.2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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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흔히 술은 여럿이 어울려 마셔야 하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지만, 요즘 추세는 혼자 마시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줄임말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이를 혼술이라고 부르지만, 따지고 보면 혼술은 요즘 일만은 아니다.

4세기 인물인 중국 동진(東晋)의 도연명(陶淵明)은 음주(飮酒)라는 제목 아래 20수의 시를 남겨 놓았는데, 이들 시의 주제는 혼술의 즐거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연명 못지않은 음주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 당(唐)의 이백(李白) 또한 혼술의 대가였으니 시의 제목부터가 독작(獨酌) 즉 혼술이었다.


달밤에 홀로 마시며(月下獨酌)

花間一壺酒 (화간일호주) 꽃 사이에 한 병 술로
獨酌無相親 (독작무상친) 홀로 마시더라도 친구가 없을 소냐?
擧杯邀明月 (거배요명월)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對影成三人 (대영성삼인) 그림자를 대하니 세 사람이 되었구나
月旣不解飮 (월기불해음) 달은 원래 마실 줄을 모르고
影徒隨我身 (영도수아신) 그림자도 다만 내 몸을 좇을 뿐이네
暫伴月將影 (잠반월장영) 잠시 달을 짝하고 그림자를 거느린 것은
行樂須及春 (행락수급춘) 응당 봄에 맞춰 즐거운 잔치를 벌여야 돼서라네
我歌月徘徊 (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이고
(아무영능란)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흔들거리네
醒時同交歡 (성시동교환) 깨어 있을 때는 셋이 함께 기쁨을 나누고
醉後各分散 (취후각분산) 취한 뒤에는 제각기 흩어지네.
永結無情遊 (영결무정유) 영원히 세상사정 떠난 사귐을 맺어
相期邈雲漢 (상기막운한) 먼 은하수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네

꽃이 만발한 봄의 한복판 어느 날 밤, 시인은 달빛이 교교히 비치는 꽃 사이에 홀로 있게 되었으니, 어찌 술 생각이 나지 않았겠는가? 비록 어울릴 사람은 없었지만, 봄 달과 봄꽃의 유혹을 뿌리칠 수는 없었으리라.

달밤 꽃 사이에 앉아서 한 잔 마시기로 한 시인은 같이 즐길 친구가 필요하였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물러날 시인이 아니었다.

굳이 사람만이 친구일 필요는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주변에 보이는 것들이 온통 다 친구였다.

그중에서 특별히 하늘의 달과 자신 곁을 서성이는 그림자, 두 분만 특별히 모시고 혼술을 즐기는 시인의 모습은 유머러스하면서도 한가하기 그지없다.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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