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는 꽃에서 향기가 난다
시드는 꽃에서 향기가 난다
  •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9.04.21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겨우내 움츠렸던 나무와 풀들이 대목을 만났다. 키꺽다리 나무나 앉은뱅이 풀이나 할 것 없이 일제히 저마다의 모양과 색으로 치장을 하고 꽃을 피워대고 있다.

봄을 알리는 전령사는 누가 뭐래도 생강나무이다. 다들 겨울잠에서 깨기 전인 약간은 쌀쌀한 날씨에 병아리 같은 연노랑 색으로 살포시 희망을 띄워놓으면 그 소식을 듣고 이어서 매화가 고고히 피어난다. 매화가 한창 자태를 드러낼 때쯤이면 여기저기서 목련, 산수유, 벚꽃, 조팝나무, 개나리, 진달래꽃 들이 앞다투며 세상 구경을 하러 얼굴을 내민다.

땅에서는 어떤가? 복수초가 언 땅을 뚫고 올라오면 그다음부터 제비꽃과 민들레는 기본이고 꽃마리와 별꽃, 큰개불알풀꽃 등이 그 앙증맞은 모습을 보여주며 추운 겨울 이기고 살아남았다고 환한 승리의 기쁨을 알린다. 모두 대견하다.

지난 주말엔 괴산 산막이옛길을 다녀왔다. 갈 때는 노루샘에서 산책로 대신 등산로를 택하여 산을 타고 가고 올 때는 산막이옛길로 걸어왔다. 매번 산책로로 편하게만 다니다가 이번에 등산로로 오르니 그리 힘든 코스도 아닌데 숨이 턱턱 찼다. 늦게 출발해 정오가 다 되어 오르기 시작하니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팠다. 오르막은 힘드니 천천히 구경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쉬면서 올라가자고 해보았으나, 남편은 운동 되게 빨리 올라가서 정상에서 쉬자고 하여 어쩔 수 없이 헉헉거리며 따라가다 보니 입이 절로 나왔다. 언제나처럼 오르막길을 오르는 일은 운동이 부족한 나에겐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힘든 일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코사족(Xhosa)의 속담을 운운하며 정상만을 향해 달리지 말고 못 걷는 사람의 속도에 맞춰 주변도 돌아보며 천천히 가자고 투정을 부려본다.

대형버스나 소형자동차가 주차장을 꽉 메웠던데 그 많은 사람은 모두 옛길로만 가는지 산길은 거의 인적이 드물었다. 힘겹게 올라 등잔봉에 다다르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청년이 우리를 반겨준다. 남편이 막대 아이스크림을 사주니 칭얼대던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듯 쉬지 않고 올라간다고 투덜대던 내 기분도 어느덧 아이스크림 하나에 녹아 행복감에 젖는다. 조금 더 가다 보니 한반도 전망대가 나왔다. 비학산 끝자락을 괴산호가 둘러싼 모습이 마치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절경을 바라보며 휴식도 하고 준비해 온 간식을 먹으니 허기도 면하고 부러울 것이 없었다.

등잔봉을 거쳐 천장봉을 지나 산막이 마을로 내려오는 길은 4.4㎞로 약 3시간이 걸렸다. 가는 길마다 꽃 전구를 달아놓은 듯 진달래가 양 길가로 피어 있어 마치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 반겨주니 연예인의 레드카펫이 부럽지 않았다.

어릴 적 싸리나무로 알았던 조팝나무는 가지마다 하얀 꽃 막대가 되어 공연 시 전자봉 대신 흔들어도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팝나무 꽃은 활짝 핀 후 시들어가면서 향기가 나는데 그 향이 참 좋다. 사람도 청춘 시절이 지나고 인생의 쓴맛을 겪어 본 사람이 깊은맛을 내듯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시를 좋아한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봄꽃처럼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