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단(文壇) 엿보기
한국문단(文壇) 엿보기
  • 전영순 수필가
  • 승인 2019.04.03 19: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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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수필가
전영순 수필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송 시인이 만나는 사람마다 시인, 수필가라 한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나 또한 식당이나 찻집에 가면 주인이 작가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20년 가까이 문단 생활하지만 본인 입으로 얘기하기 전에는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을 누가 알리가 만무하다. 한마디로 문인으로 존재감(별 볼일)이 없다는 얘기이다.

사춘기 시절 눈물 찍으며 써놓은 글을 몰래 훔쳐본 여동생이 훗날 “언니 시인 같아”하던 칭찬의 말이 전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불완전하게 자리한 내 안의 나를 달래고 치료할 의향에서 시작한 글쓰기가 오늘에 이르렀다. 어쭙잖은 글로 문단에 입적하고 문학단체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니 어떨 땐 글보다 사람들에게 관심이 더 많이 갈 때도 있다. 글은 안중에도 없고 고만고만한 패끼리 치켜세우며 활개치는 걸 보면 참 불편하다.

이 글을 보는 일부 작가들이 “너나 잘하세요.” 하겠지만, 그래도 쓴소리도 좀 해가며 나로 살고 싶다. 내가 지금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그들이 내게 반면교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문단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한국 문단에 잠재된 엘리트 의식과 문학지의 등단 장사, 작가들의 마음가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엘리트 의식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라인의 체감이다. 어느 대학·신문·문학지 출신과 누구의 문하생이냐에 따라 등단과 활동 범위가 달라진다. 등단지도 S급(최우수급)부터 F급(최하급) 등 6등급이 나누어져 있으나 여기에 속한 문예지는 100개 남짓하다. 문예연감에 따르면 2017년 발행한 문학지는 총 715종이라고 하니 그 외 문학지는 문학지로서 가치를 상실했다고 보면 무리일까?

문학지 등급은 문학단체나 문학지 예산 재정도, 내용 충실도, 작품 수준, 문학사 시행 여부, 디자인, 종이질, 홈페이지, 필자, 원고료 수준, 등단장사 여부, 신인상 상금 금액, 세련도, 서점유통도, 단체, 출판사 권위, 평판, 전통(역사) 등으로 결정한다고 하니 그 대열에 들기 위해 문학단체나 문예지는 노력하리라 생각 든다.

소수 작가를 제외하고는 F급 대열에서도 들지 못하고 활동하는 작가들이 다반사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많은 것은 등단을 빌미로 장사하는 문예지가 많다는 얘기다. 문예지 715종으로만 추론해도 한 문학지에서 일 년에 10명씩 배출한다고 해도 7150명이다. 여기에 신춘문예까지 하면 얼마나 많은 작가가 탄생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등단 장사하는 문예지뿐만 아니라 등단자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공은 고사하고 평생교육원이나 아카데미 같은 곳에서 글을 배우는 사람들도 거론되는데 대필이나 한두 편 쓴 글로 등단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그렇게 등단했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좋으련만 `내가 작가요' 하며 으스대며 오히려 글을 우습게 여기는 꼴이니 작가란 하찮은 액세서리에 불과한 세상이다.

퇴직 후 문단생활하는 후기문학파가 도래된 시대, 중기문학파 정도 되는 나는 어정쩡하게 등단해 활동하다 보니 늘 사생아가 된 느낌이다. 아직도 안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것은 도반이 그리워서가 아닌가 싶다.

문단도 정치판 같아 실력도 실력이지만 웬만한 문단생활 하려면 스승과 문우를 잘 만나야 한다. 지역에 살면서 주위의 문인들을 살펴보면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글을 좀 쓴다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F급 문예지에 글 한 편 실지 못하면서 활개치며 활동하는 작가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닌 것 같아 부끄럽다.

문학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단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시대인 만큼 참신한 작가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어디에선가 멋진 시어(詩語) 하나 찾고자 사방팔방 유랑하는 시인들이 있다. 세상을 움직일 펜의 위력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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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 2019-05-31 02:31:26
전영순 수필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딱히 태클을 걸고 싶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형적인 등단이라는 것이 참 우습긴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 신춘문예를 언급하셨습는데, 문예지 등단 보다는 유력 일간지 신춘문예 등단을 더 알아주는 데 수필가님은 더 낮게 보나 봅니다. 참고로 저는 경쟁력 없는 문예지는 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보면 나가사와는 이런 말을 합니다.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은 읽지 않는 다고 합니다. 왜냐면 지금 반짝 뜨는 작품도 시대가 다시 평가해서 걸러주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디 등단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