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여행자
지구별 여행자
  •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9.03.3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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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우리는 지구별 여행자다. 여행자에게는 누구나 적용되는 수칙이 있다. 올 때 빈 몸으로 왔다가 갈 때도 빈 몸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기회는 한 번뿐이다.

먼지보다 작은 점 같은 물질이 세포분열을 통하여 성장하면서 인간의 모습을 만들어 가고 어머니의 양분을 빨아먹으며 뱃속에서 뼈와 살을 만들어 태어난다. 태어나면서 힘찬 울음으로 지구별에 왔노라 고하고 이때부터 탯줄이 잘리므로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자신과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지구별에 온 목적이 저마다 있을 것인데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는 순간 잊히기에 일생을 통한 삶에서 목적을 찾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살면서 순탄하기만 한 삶이 어디 있으랴? 울퉁불퉁 주어진 길을 헤쳐가면서 삶의 조각인 퍼즐을 맞추듯 그렇게 자기 삶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그 지도는 본인의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남의 인생 지도를 그려줄 수는 없다. 똑같은 지도도 없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경험을 통하여 삶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지구별에 올 때 모든 것은 무상으로 주어졌고 다양하게 누리다가 여행이 끝나는 날 모든 걸 반납하고 가게 된다.

한때는 나의 든든한 울타리였고, 다정한 친구였고, 웃음을 준 아기였던 어머니가 지구별 여행을 마치고 떠났다. 그녀가 여기에 온 삶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7살 전에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여의어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진 못 하였지만, 자식에게 쏟은 사랑은 몇 곱절이었다. 없는 살림에 육 남매 키워내느라 뼈 마디마디에 살아온 세월만큼 고생의 무게를 새기며 10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이때부터 어머니의 퇴행은 시작되었다. 몸의 반쪽이 마비가 와서 두 발로 걷지 못하고 기어다니시고 말도 못 하시게 되었다. 커다란 아기가 되어 기저귀를 차야만 했고 밥을 떠먹여 드려야 했다. 그녀의 삶의 시계는 반환점을 넘어서 태엽이 거꾸로 되감기고 있었다. 그러다 호전되어 밥도 혼자 드시고 화장실도 혼자 가실 수 있었는데, 2년 전부터는 입으로 아무것도 삼키지 않으시며 몸에 붙은 살마저 모두 내려놓기 시작하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하는 그녀를 보내기 싫어서 몸집만 커진 철부지 자식은 콧속으로 관을 넣어 미음을 넣어 드리며 함께할 시간을 벌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자식을 위하여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손을 싸매고 묶어 두는 침대 감옥 생활도 기꺼이 감내하며 태엽이 다 풀릴 때까지 서서히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그녀는 돌아갈 곳을 탐색하는지 종종 우리를 못 알아보고 눈동자는 허공을 헤매었고, 겨울부터는 눈을 감고 깊은 잠 속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마치 아기가 처음 태어나면 잠자는 시간이 길 듯이 가실 때의 모습도 태어날 때와 닮았다. 그래서 우리는 태어났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인가?

88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이제 그녀는 여기에 없다. 다만 나의 기억과 추억과 꿈속으로 불쑥불쑥 찾아와 눈물도 빼고 콧물도 빼고 웃음도 짓게 만든다.

`나의 사랑이여! 우리는 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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