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이 되었다
로망이 되었다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9.03.1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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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여자는 나이를 먹어도 여자다. 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을 죽을 때까지 지니고 산다. 그 본능을 잃어버리면서 여자의 성을 버리고 제3의 성인 중성(中性)이 된다. 갱년기는 호르몬을 어지럽힌다.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고 고집을 세게 바꾸어 놓는다. 성격은 드세고 이해의 폭이 작아져 퉁명스러워진다.

우유 같은 부드러움이 사라지면서 어느 날부터 화장하는 법을 잊는다. 누구나 염색을 하던 파마머리를 짧은 생머리 커트를 한다. 정해놓은 법칙처럼 말이다. 다 똑같은 모습이 되어간다. 나는 이런 엄마를 보면서 서글펐다.

세월은 나도 비켜가지 않았다. 흰머리는 원래 새치가 많았기에 순명으로 받아들였지만 얼굴의 점도 늘어갔다. 긴 연휴가 이때다 싶어 점을 빼러 병원에 가서 놀랐다. 별러서 갔건만 내 생각과 일치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 내 앞에 서른여덟 명이 접수되어 있다. 간호사의 녹음된 듯한 지시를 따라 마취 크림을 얼굴에 도배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지루하여 옆 사람의 대화에 자연스레 귀동냥을 했다. 내 앞에 앉아있는 할머니도 나처럼 크림을 바른 채 아직도 멀었느냐고 간호사를 채근한다. 돌아와 앉으며 바쁜 일이 있는지 얼른 가봐야 한다고 투덜댄다. 옆 사람이 연세를 여쭈어보니 91세라고 한다. 더구나 메디폼을 붙이고 서울에 있는 아들네 설을 쇠러 간다고 하니 다들 더 기막혀하는 눈치다.

시간도 많을 텐데 하필이면 오늘이냐는, 그 연세면 그냥 살아도 되지 않느냐며 노망(妄)을 들먹인다. 그래도 아무 거리낌 없이 당당하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절로 떠올려지는 순간이다. 나보다 더 뒤의 순서이지만 너무 오래 기다린 탓에 차례를 양보하지 못했다.

병원을 나오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아마 몸이 아파서 오신 거라면 먼저 진료를 받게 했을 것이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이때 온 것이 얄밉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외모에 신경을 쓰느라 검버섯을 없애러 오신 할머니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누가 할머니를 구순(九旬)으로 보겠는가. 나이로만 보면 다리가 아파서 유모차를 밀고 다니거나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노인이다. 그분은 허리도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가뿐하다. 날마다 동네를 돌며 운동도 거르지 않는다고 했다. 혼자서 자신의 관리에 철저하신 분 같다. 젊은 사람들 속에서도 의기소침하지 않는 당당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자존감이 아닐까 싶다. 저토록 어언 번듯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하염없이 부럽다.

엄마가 돌아가시기까지 계셨던 요양원에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자주 거울을 보는 모습을 보았다. 비록 정신을 놓았을지언정 여자의 본능을 끝까지 붙잡고 있음이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오래도록 여자이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도 생을 다하는 날까지 여자이고 싶다. 거울을 가까이에 두어 자주 얼굴도 매만지고 옷맵시도 살피는, 멋있는 사람을 보면 가슴 뛰는 여자이고 싶다. 이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하루하루가 실감 나는 중년의 나는 요샛말로 꽃중년을 고집한다. 누가 무어라 해도 나는 미중년이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다. 그리하여 늘그막까지 아름다워지려는 마음도 무죄다. 쉰에 움츠러들어 존재감을 잃은 나보다 할머니의 용기 있고 씩씩한 모습이 내 안에 지문처럼 남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그녀. 망백(望百)의 그녀가 오늘부터 노망이 아닌 나의 로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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