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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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 승인 2019.03.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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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류충옥 수필가·청주 성화초 행정실장

 

세상이 뿌옇고 흐릿하다 못해 흔들려 보인다. 흰 벽을 보면 먼지나 머리카락이 있는 듯 눈앞에서 걸리적거린다. 눈곱이 끼었나 비벼보거나 세수를 해 봐도 마찬가지이다. 눈은 왜 또 그리 뻑뻑한지 인공눈물을 수시로 넣어본다. 시력만큼은 자신 있어서 장거리 출퇴근 시에도 차 안에서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보았었는데 과신은 금물이던가? 병원에 가보니 노안이란다. 거기에 양쪽 눈의 시력이 달라서 안경을 써서 교정해 주어야 한단다.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안경테가 바뀐 것이나 안경을 안 쓰던 사람이 쓰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지만, 나처럼 눈이나 안경에 무심한 사람은 안경을 바꾸었는지 안경을 쓰다가 수술을 하여 안경을 벗었는지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동안 내 눈이 불편했다면 남들의 안경이나 눈의 상태에도 관심을 가졌겠지만, 가족력으로도 눈만큼은 건강하게 타고났다고 자만하다 보니 관심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본다는 것은 결국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잘 본다는 것(正見)은 불교 교리의 팔정도의 하나일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내면을 보든 외면을 보든 나와 타인의 관계는 일단 보는 것부터 시작인 것 같다. 갈등이나 문제가 있을 때도 보지 않고 전화로만 통화하다 보면 오해가 생기고 부정확하게 전달될 확률이 훨씬 높아서 중요한 이야기는 만나서 눈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만큼 서로를 보며 대화하는 것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에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나 보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이 不如一見)'이란 말도 같은 맥락이다. 말로 수차례 듣는 것보다 한번 직접 보는 것이 이해가 빨라서 일 처리도 직접 발로 뛰며 가보는 것이 오류를 줄이고 빨리하는 방법이며, 여행이나 현장 체험학습도 삶을 이해하고 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중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나는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좋아하여 색안경도 즐겨 쓰지 않았다. 색안경을 쓰고 보면 자연의 색이 변해 보이는 것이 왠지 틀린 정보를 보는 것 같아서, 수시로 색안경을 벗고 원래의 색을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색안경을 오래 쓰고 있는 것이 불편하고, 나에게 있어 색안경은 여행 가서 사진 찍을 때 멋있어 보이려는 소품 정도였다.

그러나 이젠 안경을 써야 할 것 같아서 다초점 안경을 맞추었다. 다초점 안경은 보고 싶은 사물의 거리에 따라 보는 각도를 달리해서 봐야 한다. 즉, 보이는 대로만 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도 아니고, 볼 사물의 거리에 따라 눈높이를 달리해서 보아야 선명하게 잘 보인다. 지금까지는 내 눈을 기준으로 사물을 보았지만, 이제는 사물에 맞추어 내 눈을 조절해야 한다. 사람의 내면까지 눈높이를 조절하여 볼 수 있는 안경도 언젠가는 나올까?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만날 때 인사말을 `I see you'라고 하는데,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 또한 `I see you'라고 한다. 잘 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넘어서 상대방에 대한 수용과 이해와 가능성까지 포괄해서 본다는 것임을 안경을 맞추며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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