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내 차’를 애도함
또 하나의 가족, ‘내 차’를 애도함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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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무언가의 뒷모습은 대체로 애잔하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간에... 견인차에 끌려가는 내 자동차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보는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그리고,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하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 첫 구절이 떠오르며 결국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20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자동차와 영영 이별했다. 폐차장으로 끌려간 그동안의 `내 차'는 더 이상 동력을 부활하지 못하고 고철로 팔려갈 것이다. 20년 동안 동력과 구륜을 통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친지들의 움직임을 도와주었던 `내 차'의 일생은 결코 무기질이 아니다.

큰아이가 여섯 살, 작은아이는 겨우 2살이었던 푸르른 가장의 시절, 나와 인연을 맺은 내 차는 기쁨과 눈물, 그리고 분노와 좌절, 실의와 극복의 순간순간마다 늘 나와 함께했다. 1999년식 9인승 승합차의 이력을 가진 `내 차'의 일생은 각지고 굴절되었으며, 추락과 치솟음으로 점철된 그동안의 내 삶과 궤적을 같이한다.

어쩌다 몇 차례의 본의 아닌 실직과 좌절에 신음할 때, 사람들의 눈을 피해 웅크리던 시절, 멀리 신탄진의 도서관으로 나를 피신시키며 책 속에 파묻히게 했던 일. 강요와 배신으로 치를 떨며 누명의 집요한 면류관을 피하지 못했던 시절에 내 차는 제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와 함께 대청호 어디쯤 수장되는 일이 차라리 낮겠다는 끔찍한 절망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기도 했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들이 즐겁게 한스밴드의 <오락실>을 부를 때, 나는 인적 없는 강가에 차를 세우고 홀로 목이 터져라 통곡에 가깝게 그 노래를 절규하며, 눈물을 삼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별을 하기 전까지 `내 차'는 한 밤 중에 갑자기 신열이 오른 내 아이들을 응급실로 데려다 주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수도 없이 했으며, 단 한 번도 마다하는 일이 없었다. 아내가 몹쓸 병에 걸려 서울 큰 병원에서 수술할 때 가슴 떨리는 나를 편안하게 머물게 했으며, 내가 부르기 전에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 묵묵한 기다림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피폐한 몸과 마음을 간신히 추슬러 다시 희망을 찾기 위해 떠난 호미곶 가족여행에서 밤새워 일출을 기다리며 망설이고 있는 시간, `내 차'는 넉넉한 공간이 되어 용기를 가슴에서 솟아나게 하는 화수분이었다.

`내 차'가 20년 동안 처음 달았던 초록색 낡은 번호판을 단 한 차례도 바꾸지 않은 채 묵묵히 매일의 일상을 나와,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는 동안 나의 풍상(風箱)은 또 얼마나 거칠었는가.

아버님을 여의고, 형님과 누나를 잃었으며, 나를 가장 잘 알아주던 친구가 홀연히 세상을 등졌을 때도 `내 차'는 거기 무덤까지 비통한 길을 나와 함께 하며 내 설움을 제 몸에 전이시켜 슬픔의 무게를 줄여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내 차'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나는 기계에도 생명이 있고, 교감할 수 있는 정다운 온기가 있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엉뚱하게도 인간의 자격으로 `내 차'와 일방적인 영원한 이별을 결정하고 난 이후 기계적 장치들과의 교감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4차산업시대 소통의 무게를 통감한다.

“인공지능도 감각·판단 능력이 있다. 이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감각과 판단은 복잡하고 가끔은 합리적이지 않다. 수많은 위대한 작품은 불합리하고 복잡하다”는 대만의 저술가 탕누어의 말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서 의미심장하다.

「무죄한 너를 마치니, 백인(伯人)이 유아이사(由我而死)라, 누를 한(恨)하며 누를 원(怨)하리요. 능란한 성품과 공교한 재질을 나의 힘으로 어찌 다시 바라리오. <중략> 네 비록 물건이나 무심ㅎ지 아니하면, 후세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과 일시생사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哀哉)라」<조침문(弔針文)에서> 조선시대 유씨부인의 `바늘'과 `내 차'와의 별리(別離)의 애절함은 세월이 흘러도 크게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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