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받지 않았다
거저 받지 않았다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19.03.0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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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강대헌 에세이스트
강대헌 에세이스트

 

3월 1일 새벽 네 시에 눈을 뜨자마자 입을 열어 또렷이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다시 또 하루를 맞이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했고, 삼일운동 100주년을 기념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는, 지나칠 뻔했던 기지개를 켰습니다.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와락 껴안는 상상을 하면서요.

퍼포먼스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나간 시간들로 빼곡한 2월의 달력을 찢어내고는, 뒷면에다가 붓 펜으로 `대한독립만세 백년(大韓獨立萬歲 百年)'이라고 쓰고는 안중근 의사(義士)가 떠오르기에 손도장까지 찍었습니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던 그분이었죠.

무릎을 꿇고는 특별한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를 주관하는 신께 간곡히 기도했습니다. “이 민족과 나라를 세세무궁토록 지켜 주옵소서. 1919년 3월 1일 그날의 뜨거운 함성을 망각하지 않게 하옵소서. 또한 이 민족과 나라가 세계 인류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서도 큰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아직 잠들어 있는 딸의 귓가에 “대한독립만세!”라고 나지막이 속삭이기도 했습니다.

이틀 전 찍었던 사진 한 장을 휴대폰 갤러리에서 찾았습니다.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신현림의 사진전 `사과꽃 당신이 올 때'에서 보았던 수인복을 입은 유관순 열사(烈士)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 사과꽃 작품을 찍었던 것인데, 작품 아래에는 신현림의 외할아버지가 독립자금을 나르다 붙잡혀 고문받고 죽었다는 이야기를 담은 `사과꽃 진혼제'라는 슬픈 시가 딸려 있었죠.

태극기를 걸고 아침을 먹고 나서 정오가 되기 한 시간 전부터는 TV로 광화문 광장의 `제100주년 삼일절 기념식'을 시청했습니다. `함께 만든 100년, 함께 만드는 미래'라는 주제도 좋았고, 윤봉길 의사(義士)의 증손인 배우 윤주빈이 낭독한 `심훈 선생이 옥중에서 어머니께 보낸 편지'도 뭉클했습니다. “날이 몹시 더워서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고, 밤이면 빈대 벼룩이 다투어가며 짓무른 살을 뜯습니다. 그렇건만 하나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은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와 같은 대목이 더욱 그랬었죠.

정오가 되니 `전국 동시 타종 및 만세'를 한다고 하여 만세삼창을 거듭했습니다.

오후의 시간에도 방점을 찍고 싶었습니다. 기념식 축하공연에서 `아리랑'을 불렀던 배우 고아성이 출연한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A Resistance, 2019)'를 보았습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죽어가던 유관순에게 어느 투옥자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요?”라고 묻자, 유관순이 “그럼 누가 합니까?”라고 되묻던 장면을 잊을 수 없더군요.

“우리가 본디 타고난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넉넉히 지닌바 독창적 능력을 발휘하여 봄기운이 가득한 온누리에 겨레의 뛰어남을 꽃피우리라.” 1979년 삼일운동 60주년을 기념해 한글세대를 위하여 작성되었던 독립선언서를 원문과 비교해 읽어보다가, 성큼 다가온 봄 소식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올해 3월 1일은 우리의 독립이 거저 받은 것이 아님을 다시 공부하고 절감할 수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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