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숲 속에서
욕망의 숲 속에서
  •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 승인 2019.02.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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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배경은 독서논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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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은 타인(사회)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욕망(목표)은 일단 접어둔다. 다른 사람이 무얼 먹고, 입고 무얼 소비하는지에 촉을 세우다 사회의 욕망과 잠시 타협할 것이다. 자기가 해낼 수 있는지 견적을 내야 할 테니. 그리고 어느 정도 계산이 끝나면 사회의 욕망을 성취하고, 많은 사람 앞에 영광스럽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 영광스러운 무대는 마치 자신이 처음부터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간절했던 것으로 치환된다. 타인의 욕망이 수단과 도구가 되어 나의 목표가 되고, 결국 살아가는 힘이 되는 것이다. 언뜻 보면 요즘 시스템이 주는 자연스러운 라이프 스타일(life-style)일 수도 있다. 자아의 주체적 생각을 열 틈도 없이 사회가 원하는 영광이 되는 것. 대부분 부와 명예가 따라올 테니 못살았다고 스스로 후회하는 확률 또한 적다.

존 클라센의 그림책-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엔 큰 부자가 등장한다. 세상 좋은 것은 다 가진 사람, 황금 깃털을 꽂은 창 넓은 모자를 쓰고 바닷가 작은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은 소녀 애너벨이 털실로 마을 사람들의 스웨터를 떠 입힌다는 소문이 있다. 무엇보다 부자의 마음을 끈 것은 털실을 넣어 두는 상자엔 털실이 늘 넘친다는 것이다. 부자는 그 털실 상자를 사고 싶어 소녀를 찾아온 것이다. 마을은 이미 애완동물과 집, 나무까지 스웨터를 입어 잿빛 겨울 마을이 환해지고 경쾌하게 변했다. 부자는 당연히 털실 상자를 손에 넣지 못한다. 소녀가 10억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부자는 도둑을 고용해 털실 상자를 훔쳐오게 한다. 그는 그 신기하고 거룩한? 상자를 열어보기 위해 가장 좋은 음악을 틀고 가장 좋은 의자에 앉는다. 그러나 상자를 열어본 부자는 분노의 고함을 친다. 상자에서 자꾸만 나오던 털실은 단 한 올도 없던 것이다. 왜 그의 눈에는 털실이 보이지 않았을까.

세태의 욕망을 욕망한 사람은 사회가 변할수록 욕망도 널뛰기한다. 부자에겐 세상의 온갖 영광이 있지만 자기만의 욕망은 있을까 염려된다. 이런 의문이 들 때마다 조르바가 생각난다. 물레질하다가 새끼손가락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잘라버렸다는 그. 그렇다고 조르바가 질그릇의 장인이 되었다던가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다는 얘긴 없다. 그는 그때 질그릇 만들기에 빠져 있다가 새끼손가락이 불편해 자른 것뿐이다. 잘린 손가락의 대가는 없었다. 지독하게 자기의 욕망만을 위해 산 인물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면 난 질투와 부러움의 화신이 되어서 자책만 하고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온전히 내가 원하는 욕망의 주체로 산다는 것은 많은 불편과 손해, 오해와 껄끄러움을 참아 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현실에선 자기만의 욕망은 찾기도, 지키기도 쉽지 않다.

애너벨에게서 털실 상자를 훔친 부자는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까. 털실 상자의 교훈이 부디 그에게 작동되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 전에 먼저 자신과 충분히 대화를 해보았으면 좋겠다. 유행하는 프레임에 나를 가두고 몰아가기보다 잠시 하늘을 보고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바라보는 것, 자신만의 욕망에 대한 고민이 스스로를 아름답게 세울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우리도 애너벨처럼 주위를 환하고 경쾌하게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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