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무침 그리고 50℃ 세척법
냉이무침 그리고 50℃ 세척법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19.02.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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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한겨울의 추위가 잠시 주춤하다.

이런저런 급한 일 없이 나른한 오후. 냉이는 봄나물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나는 겨울 냉이무침이 더 좋다. 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 아니고 논·밭에서 모진 추위를 이겨내는 냉이는 향기도 깊고 얼지 않기 위해 생체농도가 높아져 그 달달한 맛이 아주 좋다.

겨울이면 늘 그랬듯이 냉이무침이 생각나 작은 곡괭이 하나 들고 양지 바른쪽 밭으로 나갔다. 겨울철 추위에 자줏빛으로 변한 잎이 밭의 흙색과 비슷해 냉이 찾기도 쉬운 일이 아니고, 며칠간 이어진 강추위 때문에 언 땅이 채 녹지 않아 냉이 캐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럭저럭 먹을 만큼 캤는데 문제는 냉이를 씻고 다듬는 것이다. 얼어서 흐물흐물해진 잎을 하나하나 떼어내야 하니 캐는 것보다 더 귀찮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싱싱한 잎만 남겨야 하는데 전부 얼어서 흐느적거려 다 떼어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따뜻한 물에 담갔다 건져 내면 언제 흐느적거렸느냐 라는 듯이 싱싱한 잎이 제법 많아진다. 그리고 얼어서 녹은 잎만 제거하기 쉬워진다. 이른바 50℃ 세척법이다. 채소는 따뜻한 물로 씻으면 삶아질 것 같아 찬물로 씻어야 한다는 생각이 보통이다. 그런데 따뜻한 물에 씻은 시든 냉이는 왜 다시 싱싱해진 것일까?

온천수에서 채소를 씻는 문화에서 힌트를 얻어 `50℃ 세척법'을 고안한 일본인 과학자 히라야마 잇세이씨는 50℃ 물에 씻어야 채소가 싱싱해지고 식감이 살아난다고 한다. 그 원리는 “채소와 과일은 호흡을 하고 수분을 잃으면서 시드는데, 뿌리 뽑힌 채소는 이를 최대한 막기 위해 잎 표면의 기공을 스스로 막는다”며 “50℃ 물에 담그면 순간적인 충격에 의해 기공이 열려서 외부 수분을 40%나 흡수하므로 싱싱해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충격을 열 충격이라고 하는데 하필 50℃인 이유는 그 이상이면 세포막이 망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일은 당도가 높아진다는데 이는 과일 내 효소를 활성화시켜서 과일이 숙성되기 때문이다. 생선과 고기도 50℃ 물로 씻는 것이 좋다고 한다. 생선은 비린내가 없어지고 고기는 부드러워지고 잡내가 사라진다고 한다. 뜨거운 물이 채소나 과일의 표면에 붙은 오염물질을 제거해 보관기간도 길어진다고 한다.

일견 그럴듯한 이론이고 실제로 일부 생활에 응용해볼 만한 채소 세척법이다. 그러나 시들시들한 냉이를 찬물에 씻어도 싱싱해진다.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채소나 과일을 한꺼번에 많이 사서 시들 때까지 보관하지 않고 적당한 양을 구입하는 것이 좀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흙이 잔뜩 묻어 있는 냉이. 50℃ 물로 씻기에는 양이 많고 흙이 싱크대 배수구를 막을 것만 같아 마당의 찬 수돗물로 대충 씻어서 실내로 들여왔다. 찬물이라도 냉이 잎이 제법 싱싱해졌다. 실내에 들어왔으니 나도 50℃ 세척법을 이용해 볼까? 우선 손이 따뜻해서 좋다. 비들비들 시들시들 말랐던 냉이가 찬물, 뜨거운 물을 만나 다시 싱싱해지는 것을 보니 끈질긴 생명력이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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