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심각한데 정책 매번 엇나가…중·장기 건전성 내다봐야"
"가계부채 심각한데 정책 매번 엇나가…중·장기 건전성 내다봐야"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9.02.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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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정책 포럼 보고서…김영일 시장정책연구부 박사 발표
韓 가계부채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2배 불어…소득보다 빨라

"신용 과잉 상황에선 경기 침체 폭 크고 기간도 오래 지속돼"

"단기 성과 집착했던 과거 정책 실패…現 정부, 방향성은 맞아"

"기관장 임기보장 등 정책 시계 좁히는 경향 사전에 차단해야"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소득보다 빠른 수준으로 늘어나며 경기 침체 위험을 높이고 있음에도 이를 관리하기 위한 과거 정부 정책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중 유동성을 늘려 단기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보단 중·장기 건전성을 내다보는 방향으로 거시 건전성 관리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9일 발표한 KDI 정책 포럼 제272호에서 김영일 시장정책연구부 박사는 미국,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 독일 등 주요 선진국과 달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국가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은 지속해서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3사분기에 713조원 규모였던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10년이 지난 지난해 3분기 1514조원으로 2배가량 불어났다. 같은 기간 소득 증가세보다도 빠른 속도다.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호주, 스위스 등 한국과 같이 부채비율이 지속해서 늘어나는 국가들도 일부 있다. 다만 이 국가들은 우리나라보다 연금이나 노후 소득, 사회보장 시스템 등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편이라 가계부채에서의 충격이 발생했을 때 이를 완충할 수 있는 기제가 탄탄한 편이라는 설명이 더해졌다.



김 박사는 "가계부채는 규모, 증가세, 질적 측면 모두에서 오랜 기간 우리 경제의 핵심 위험요인으로 인지돼 왔음에도 이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간 수많은 대책이 나왔지만, 적어도 총량 측면에선 가계부채의 연착륙은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김 박사는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 주체들의 신용 활동이 빠르게 증가하거나 과도한 수준에 이를 때, 즉 '신용 과잉' 상황에서 금융위기 또는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며 경기 회복도 지연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짚었다. 김 박사가 인용한 논문에 실린 '과거 130년간 주요 선진 경제권의 경기 침체 사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금융위기를 동반한 경기 침체가 보통의 경기 침체에 비해 폭이 크고 오래 지속됐다. 신용 과잉이 더해지면 침체 수준은 더욱 악화됐다.



1997~1998년 한국 외환위기 역시 대외채무 관리 소홀과 주요 대기업의 과도한 채무가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2003~2004년 '카드채 사태' 당시에도 카드 대출 등 가계의 과도한 신용 활동이 문제가 됐었고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가계부채가 소비 부진 심화에 기여한 요인으로 지적됐다.



김 박사는 신용 과잉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내수 부양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주체 및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회복 탄력성을 훼손해 사회 전체의 후생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물 경기 안정만으로 거시적인 금융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에 따라 거시건전성 관리체계의 중요성이 부각됐다"며 "신용 과잉에 대응한 거시 건전성 정책은 과도한 신용 활동을 제어해 중·장기적 거시 경제 안정에 기여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단기적으로 신용 활동을 제약한다는 점 때문에 거시 건전성 정책은 이해관계자의 반대나 정치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생산, 고용 등 당장의 실물 경기가 부진할 경우 대중적 지지를 얻기 힘들고 민간 신용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이 반대하고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선거 등을 의식해 단기적인 성과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은 대출 규제를 풀어 당장의 내수를 진작시키고자 하겠지만, 이로 인한 미래의 부작용이나 위기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며 "실제 과거 신용 과열에 따른 금융 불안 및 신용 급증 사례에서 단기 성장률 실적 등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성장 중심 경제 정책하에 금융기관 건전성 규제 및 감독이 미흡했던 데다 대기업에 대한 신용을 과도하게 공급했던 것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가져온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했다. 카드대란 사태 때도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과 더불어 카드사 과당 경쟁에 따라 부실 대출이 증가했던 대해 감독 당국의 대응이 미온적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2014년 하반기 이후 가계 신용이 급격히 팽창해 왔음에도 경제 성장률 둔화에 대응한 내수 활성화 기조가 거시 건전성 보다 우선시됐다는 분석이다. 2014년 7월 당시 박근혜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경제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고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 가능성을 우려했었다. 김 박사는 "당시 정부는 통화·재정 정책 등 전통적 경기 안정화 정책뿐 아니라 주택, 금융까지 포함한 가용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내수를 부양하고자 했다"며 "당장의 소비 부양을 위해 장기적으로 경제 전체의 위험을 더 키우는, 즉 거시 건전성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등 차입 규제나 금융기관에 대한 자산·부채 규제 및 손실흡수력 규제, 부동산 등 특정 자산에 대한 과세 등 현 정부의 규제 정책은 방향성이 맞다는 평가다. 특히 정책 결정자가 단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경향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이나 유로 지역 국가에선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된 중앙은행에서 거시 건전성 정책을 담당해 단기 성과주의를 차단하고 있다. 호주, 캐나다 등에선 외부의 별도 규제·감독 기관이 거시 건전성 정책을 수행하고 있는데, 중앙은행보단 정치적 영향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지만 정책 결정 과정의 개방성과 투명성이 보장된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기관을 두고 있는 한국은 후자에 가깝다. 결국 정책 수행 기관의 책임성과 운영상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김 박사는 금융위, 금감원 등 기관 의사결정권자의 법적 재임 기간을 보장하고 필요하다는 장기화하는 것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재임 기간이 늘어날수록 의결 과정에서의 독립성이 보장되고 정책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쉽다는 것이다.



그는 상위 결정권자에 대한 '이연보상제도(deferred compensation)' 역시 검토해 볼 만한 방안으로 들었다. 정책의 장기 부작용에 대한 책임까지 질 수 있도록 급여의 10~20%를 퇴직 이후 3~5년간 금융 시장에서의 성과에 따라 일부 지급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조직의 수장이 교체될 수밖에 없고, 정책 성과에 대한 평가도 차기 정부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 여건과 관련해 김 박사는 "정권 교체에 따라 수장이 바뀌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을 구분하는 것이 한 방법"이라며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독립된 정부 조직의 경우 기관장의 재임 기간을 최대한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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