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
  • 하은아 진천도서관 사서
  • 승인 2019.02.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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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행복한 책읽기
하은아 진천도서관 사서
하은아 진천도서관 사서

 

어렸을 때 상상한 어른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나의 생각과 무관하게 누군가가 나를 좌지우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른'이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문과와 이과를 선택하는 시점에서도 나는 철저히 어른의 의견을 따랐다. 산수에서 수학으로 옮겨가는 첫 과정에서 나는 수학을 적잖이 못 했다. 내 생각에는 정말 다 맞은 답이었다. 열심히 풀었고 답을 도출했는데 틀렸다고 했다. 화난 마음에 선생님께 답안지 확인도 요청했으나 내가 본 것은 빨간 펜으로 선명하게 체크된 오답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 수학을 못하는 아이로 낙인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수학을 그리 못하진 않았다. 답을 알아내는 것도 꽤나 재미있었고 고등학교 시절 자율학습 시간에는 열심히 수학문제집만을 풀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문과와 이과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가족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문과를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과와 문과 사이에 갈팡질팡했던 나에게 이과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명령과 같았다. 그렇게 나는 문과를 갔고 대학을 갔으며 정말 문과스러운 일을 지금 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가족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면 오빠는 “네가 강력하게 주장했어야지!”라고 받아넘기고, 언니들은 “그다음부터 너의 수학성적을 잘 몰랐어!”라고 말한다. 이과를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다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어떤 동경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어른처럼 보였던 가족들의 생각을 나는 철저하게 신뢰했었다.

작가 김보통은 나와 같았던 그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담하게 저서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김보통 글, 그림, 2018, 한겨례출판)에 풀어놓았다. 가난이 흔했던 시절의 이야기, 맥락 없이 흘러가버린 청소년기의 시절, 서서히 자라서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의 이야기를 작가는 고백하듯 그려냈다.

“살면서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타인도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나아가 그것을 왜 못하냐고 종용하는 것 역시 안 하려고 노력한다.” 작가의 이 말에 나는 정신력으로 버텨야지 왜 못하냐고 책망하던 나를 생각했다. 나는 순간순간 나와 타인의 다름을 알아챈다. 나와 아이와 다르고, 나와 동료직원이 다르며, 친구가 다르다. 각각 다른 생각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때로는 그런 삶을 동경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한다. 각각 나름나름의 이유로 행복하면 그뿐인데 말이다.

어린 시절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그 마음먹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그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마음먹는다 해도 안 되는 것은 안된다는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세상 모든 일은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일을 안 하는 것, 공부를 못하는 것 등은 다 마음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을 먹어도 되지 않은 일들이 많음을 깨달았을 때 나 자신을 스스로 다그쳤던 나에게 미안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김보통 작가가 말하는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은 그런 것일 것이다. 나름나름의 행복을 찾아가는 일, 주어진 삶을 마라톤처럼 완주를 해나가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는 것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이면서도 왠지 서글픈 일이다. 나도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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