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목련
백목련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3.28 1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은 져도 꽃이지
정 상 옥 <수필가>

겨우내 잠자던 생명이 부산스레 움직이는 봄날이다. 한동안 건조한 기후로 먼지만 푸석 날리더니 어제는 밤이 이슥토록 비가 내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들녘이 밤새 내린 비에 촉촉이 젖어 싱그러워 보인다.

맑고 투명하게 쏟아지는 아침햇살과 함께 남녘에선 훈풍이 불어오고 화목들과 파릇한 생명들은 흐드러지게 꽃 피울 채비를 분주히 하는 듯하다.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라 모든 생명체가 반가워야 할 날이었건만 3월의 끝자락에 서서 계절의 정서를 즐기려던 여심에게는 어제 내린 비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었다. 그저 나에겐 아름다운 봄 산 정취에 물씬 빠져보려던 욕망으로 모처럼의 산행을 준비했던 계획을 무산시킨 짓궂은 비일 뿐이었다. 이루지 못한 산행의 아쉬움을 다음으로 미루고 대신 집 앞에 있는 공원을 걸었다.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황량한 공원을 지키던 나목들이 파릇한 새 생명의 촉을 틔우는 모습을 보니 산고의 고통을 참고 견디어온 모성처럼 신성해 보인다.

발아래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나지막이 피어난 노란 민들레와 그 옆에 제비꽃 한 송이가 아직도 빗방울을 머금은 채 다소곳이 어우러져 그 모습이 아리잠직하다. 고고한 자태로 우아하게 피어나던 목련꽃잎들이 간밤의 세찬 빗줄기를 맞아 기운이 소진됐는지 속절없이 뚝뚝 떨어져 있다. 만개의 향연을 누리기도 전에 짧은 청춘을 접고 오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발길에 밟히어 길바닥에 나뒹구는 퇴색된 목련꽃잎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이유 없는 서글픔이 몰려온다. 아직 만끽해야할 젊음이 가슴에서 출렁이는데 의지와는 달리 어느덧 중년이란 연륜의 고갯마루를 훌쩍 넘어서 있는 푸석한 내 모습이 불현듯 보였을 때처럼. 무언가 소중히 아끼던 애장품을 하룻밤 새 송두리째 잃은 듯한 상실감이 마음 한구석을 휘젓는다.

올해는 봄을 맞으며 활짝 핀 꽃을 보려는 설렌 감성보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두근거리는 증상을 먼저 몸으로 느껴야 했다. 여태껏 사고와 정신세계가 아직 파릇하고 젊음의 감성이 충만하다며 자부하고 살았었다. 지독한 독감도 하룻밤 푹 쉬는 걸로 거뜬히 극복할 수 있는 체력이고 무엇이든 이루고자 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해낼 수 있는 오기와 열정도 가득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인가 천근 만큼 무거워지는 몸동작은 제켜두더라도, 작은 난관 앞에서 자꾸만 작아지는 용기가 설핏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일원에서 작은 소외와 무관심도 쉽게 삭혀지질 않고 가슴앓이가 되어 벌겋게 모란꽃처럼 얼굴로 피어올랐다.

높고 푸른 이상과 뜨거운 정열과 강인한 투지만이 젊음이라고 단정하던 아집이 객기란 걸 스스로 받아들이기까지는 의사의 진단이 필요했었다. 계절이 바뀌는 건 자연의 섭리이듯 나의 연륜은 갱년기 초기 증상으로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시켰고, 인정하기까지 지독한 열병처럼 봄 앓이를 했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에게 일렀다. 겸허히 받아들이자고.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눈부심이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살아오는 동안 내게 꽃들은 그저 아름다웠을 뿐이며 때가 되면 피어나고 말없이 졌다. 침묵의 언어로 사랑과 희망과 위안을 조건 없이 무한정 주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색깔로, 크고 작음으로 편을 나누어 갈라놓으며 진가(眞價)의 의미를 붙이곤 했었다. 참으로 편파적이며 이기적인 눈대중이었음을 이제야 돌아본다. 누구를 위한 허식이 아니며 가장 속임 없는 사랑의 언어로 영혼이 시들지 않는 꽃으로 이 봄에 남길 바란다면 허욕일까. 아니, 꽃이 시들 때 비로소 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넓고, 깊고, 맑은 혜안을 원한다면 더 큰 욕심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