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바다 된 윤한덕 영결식…"응급환자 제때 치료받길"
울음바다 된 윤한덕 영결식…"응급환자 제때 치료받길"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9.02.1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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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의료원서 영결식…마지막 출근길 배웅
가족·동료들 그리움에 눈물·탄식…"편히 쉬세요"

어머니 "아이고 내 아들 한덕아" 부르며 오열도

아들 "정도 걸은 아버지…함께한 날들 그리울 것"

직장동료 "가족들 시간 빼앗아 죄송하고 감사해"

사무실 앞에는 국화·아메리카노·전자담배로 추모



"정직하고 정도를 걷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자란 우리 가족은 하시는 일을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늘 옳은 일이라 여기며 지지했습니다. 함께 한 시간은 적지만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연구동 9층 대강당. 설 연휴인 4일 오후 6시께 본인 집무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아들 윤형찬군은 눈물 대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윤군은 "이번 일을 겪으며 아버지가 이루고자 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주신 분들을 알게 됐고 아버지 주위에 좋은 분들이 많은 것 같아 행복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아버지께 가끔 고민을 털어놓을 때마다 아버지가 한 말은 '넌 크면서 느끼는 생각이 나랑 똑같아, 닮았어'"라며 "저는 아버지와 가장 닮은 사람이기에 아버지가 가족에게 늘 미안한 마음 가진 것을 알고 있지만 이제 난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한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윤 센터장을 떠올렸다.



"모형 비행기를 만들고 했던 날들이 그리워질 것"이라며 윤 센터장에게 인사한 윤군은 끝으로 "이번 부친상을 위로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하다.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로 추도사를 마무리했다.



오전 8시48분께 윤형찬군이 영정 사진을 들고 대강당에 들어서고 뒤따른 윤 센터장의 어머니는 웃고 있는 윤 센터장 사진을 향해 "아이고, 내 아들 한덕아"를 애타게 부르며 울부짖었다.



이때 서울 아침 기온은 영하 7도까지 떨어졌지만 영결식장은 가족과 응급의료 일선에서 뜻을 함께 했던 동료, 함께 일한 직원 등 300여명이 자리했다.



추도사가 이어지는 내내 침묵이 흘렀던 영결식장은 2017년부터 재난·응급의료상황실장을 맡아 윤 센터장과 일해 온 윤순영 실장이 "그렇게 밖으로 사진 찍히는 것 싫어하시더니 실검(실시간 검색어순위) 1위를 하셨네요. 왠지 '나 이거 싫은데'라고 툴툴거리시는 내 귀에 선명히 들리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순간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윤 실장은 "직원들이 함께 소통도 하고 좋은일 슬픔일을 같이 나누자고 당신께서 만드셨던 카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갑자기 센터장님 부고 알림이 올라오자 직원들은 서로 애도하고 위로하는 말 한마디조차 꺼내지 못했다"며 다시 말을 잇지 못했다.



겨우 눈물을 참은 윤 실장은 "연휴가 끝나면 다시 어디선가 센터장님이 나타나실 것만 같다"며 "모든 무게를 짊어지시면서도 저희가 방문을 두드릴 때면 항상 귀담아 들어주셨는데 저희는 왜 그런 일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까요"라며 재차 울먹였다.



"당신의 소중한 가족들이 가졌어야 할 귀한 시간을 저희가 빼앗아 그동안 정말 감사했고 죄송했다"며 인사를 건넨 윤 실장은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병원에서 실수하면 몇명의 환자가 죽지만 우리가 실수하면 몇백명, 몇천명의 국민들이 죽을 수 있다'는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센터장님의 뜻을 받들어 항상 국민들 편에서 일하는 우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센터장님의 웃음이 그립고 내일부터 일상에 센터장님 부재가 확연해질 것이 두렵다"면서도 "업무에 대한 생각이 너무 커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표하신 적이 있지만 그 미안함 모두 잊으세요. 그동안 윤한덕이라는 분을 직장상사로 둬서 너무 행복했고 자랑스러웠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윤 실장이 단상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생전 윤 센터장 모습을 떠올린 직원들은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가족과 동료 순으로 이어진 헌화 때도 참석자들은 눈물을 머금은 채 웃고 있는 윤 센터장 사진 아래 국화를 내려놓았다.



이후 윤 센터장의 조카가 영정사진과 위패를 들고 아들 윤형찬군 등 가족, 직원 등과 함께 설 연휴에도 자리를 비우지 못했던 집무실이 있는 행정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윤 센터장 마지막 출근길 양옆으로 선 직원들은 윤 센터장이 지날 때마다 눈시울이 불거진 채 고개를 숙이고 묵념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중앙응급의료센터장실' '응급의료기획연구팀'이라는 푯말 아래 멈춰 선 윤 센터장과 가족 앞엔 국화 꽃다발 5개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6잔, 전자담배 1개가 놓여있었다. 커피믹스를 달고 살았던 그에게 평소 직원들이 건강을 생각해 권했다는 아메리카노. 천천히 마실 수 있도록 빨대가 꽂혀있었지만 마실 수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국화에는 "센터장님, 좋은 곳으로 가셔서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시고 편히 쉬세요.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글이 적힌 쪽지가 붙어 있었다.



행정동 주변을 반바퀴 돌아간 추모행렬은 사무실 창가가 보이는 쪽에서 한 번 더 멈춰 섰다. 창가엔 그곳이 '응급의료기획연구팀' 사무실임을 알려주는 종이가 붙어있었다.



2002년부터 1개팀씩 팀장을 맡아 팀을 꾸려나가고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방식으로 일해온 윤 센터장의 마지막 직책은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자 응급의료기획연구팀장이자 응급의료평가질향상팀장이었다.



100여명이 윤 센터장과 그의 가족 뒤를 따라 행정동을 지나치는데도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윤 센터장 사무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앞선 추도사에서 이국종 센터장은 윤 센터장을 지구를 떠받치는 그리스 신화의 신이자 1번 경추를 가리키는 '아틀라스'로 표현하며 그의 이름과 '아틀라스'를 닥터헬기(응급의료 전용헬기)에 새기고 함께 비행하겠다고 했다. 그는 평소였다면 윤 센터장이 서 있었을 사무실을 10분 넘게 바라보다가 행렬의 끝이 보이자 그때서야 뒤를 따랐다.



장례절차가 진행되는 기간 고인이 머물렀던 장례식장을 끝으로 가족과 직원들은 버스에 올랐다. 윤 센터장은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된 뒤 장지인 경기 포천시 광릉추모공원으로 향한다.



윤 센터장을 '최고의 아버지'라고 기억하며 의연하게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던 아들 윤형찬군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아버지를 향해 "사랑합니다"라고 작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국립중앙의료원장'으로 치러진 윤 센터장 장례절차는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장이 위원장을,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허탁 전남대 의과대학 교수, 윤순영 재난·응급의료상황실장 등 13명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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