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츄샤는 흘러간다
카츄샤는 흘러간다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9.01.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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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카츄샤! 참 서러운 이름입니다. 기구한 여인의 슬픔 이름입니다.

양공주, 양색시란 놀림과 화냥년이란 손가락질 받으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했던 가련한 여인의 이름입니다.

6.25전쟁이 낳은 민족의 부끄러운 이름이자 희생양이었습니다.

피부색과 머리색과 얼굴모양이 다른 자식을 낳은 이른바 튀기라 불리는 아들딸의 엄마였고 어머니였습니다.

그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악극 `카츄샤는 흘러간다(극본 김태수, 연출 문길곤)'가 지난주에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성황리에 공연되었습니다.

그것도 지방극단이란 꼬리표가 붙은 극단 청사(대표 문길곤)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내로라는 유명배우 한 명 쓰지 않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로만 캐스팅해 이룩한 쾌거입니다.

1500석의 대공연장에서 3회 공연을 했는데 거의 만석을 이룰 정도로 관객몰이를 했으니 시사 하는바가 참으로 큽니다. 150석도 안 되는 소극장도 채우기 어려운 연극계 현실을 감안하면 대박에 가까운 흥행이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지방극단의 사정은 참으로 열악합니다.

청주지역에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5개 극단이 연극전용 공립극장이 없어 대부분 사설공간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시민들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큰 무대만 찾지 지역 극단의 연극공연에 힘을 실어주지 주지 않습니다. 지역예술을 살려야할 충북도와 청주시도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작비가 부족해 배우들의 출연료는 물론 연기를 뒷받침해줄 무대장치와 무대의상과 조명과 효과음 등이 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작비를 건지지 못하는 공연이 태반이니 속된 말로 전업배우들이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하여 대부분 생계를 위해 투잡을 뜁니다.

낮에는 뿔뿔이 흩어져 노동을 하고 쉬어야 할 시간을 쪼개어 연습을 하고 작품을 무대에 올립니다.

악극 `카츄샤는 흘러간다`도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악조건을 뚫은 대반란이었죠.

좋은 극본과 배우들의 열연과 울림의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시대상을 보여주는 영상과 악단의 수준 높은 연주와 무용수들의 현란한 춤들이 보는 재미를 더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카츄샤 역을 맡은 이은희 배우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기와 호소력은 압권이었습니다.

마지막 공연에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박종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관람하고 격려해 의미를 더했습니다.

다시 카츄샤로 돌아갑니다.

카츄샤의 본명은 금홍입니다. 시골마을 대갓집에 시집와서 세 살 난 순영이의 엄마로, 사랑하는 남편 명구의 아내로, 대갓집 며느리로 행복하게 살던 착한 아낙이었습니다.

느닷없는 6.25전쟁으로 3대 독자인 남편은 군대로 징발되고, 부르주아로 몰려 인민군에 불려간 시부모를 구하려 나갔다가 그만 미군 흑인병사에게 겁탈당하고 맙니다.

그 일로 시부모에게 쫓김을 당하고 흑인아들까지 낳게 되자 금홍은 아이 양육을 위해 카츄샤라는 이름의 양공주가 됩니다. 억척스럽게 돈을 벌어 업소의 사장이 되지요.

한편 시부모는 동네 사람들에게 죽창으로 죽임을 당하고, 군에 갔던 남편은 전쟁 중에 두 눈을 실명한 채 집으로 돌아와 금홍을 찾으려 어린 딸과 함께 엿장수를 하며 전국을 돌지만 만나지 못합니다.

세월이 흘러 차별대우로 힘들어하던 튀기아들을 미국으로 보낸 후 방송국의 사람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시집간 딸을 만나고, 안마사로 일하다 알게 된 여인과 재혼한 남편을 만나면서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카츄샤의 노래'와 함께.

이처럼 카츄샤의 비극과 한 가정의 몰락은 힘없는 국가가 만든 시대의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강성해야 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극이 더는 없도록.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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