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진실
사실과 진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9.01.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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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공자는 생애 절반을 자신을 알아줄 군주를 찾아 천하를 떠돌았다.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먹고 자는 풍찬노숙(風餐宿)은 그에게 일상이었다. 어느 날 그는 길가에서 잠자리와 저녁거리를 준비하는 제자들 사이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보게 된다. 총애하던 한 제자가 한참 뜸을 들이던 밥솥을 열더니 밥을 한 줌 집어 입에 털어넣는 것 아닌가. 스승에게 올릴 음식에 먼저 입을 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무례요 불경이었다. 공자는 자신의 가르침이 헛된 일이 되고 마는 처참한 상황을 목도하고는 절망했다.

그러나 제자의 진의를 다시 확인은 하고 싶었다. 그 제자를 불러 말했다. “오늘이 아버님 제삿날인 것을 깜빡했구나. 서둘러 제사를 준비하거라”. 제자가 황급히 답했다. “스승님, 밥을 새로 지어야겠습니다. 아까 밥솥에 검불이 날아 들어가 제가 검불이 묻은 밥을 한 움큼 집어 먹었습니다. 부정 탄 밥을 어찌 제사에 올리겠습니까”. 공자는 “눈으로 똑똑히 본 것조차도 진실이 아닐 수가 있구나”하며 크게 탄식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목포에서 건물을 무더기로 매입했다가 투기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1년 반 동안 가족과 지인 등을 통해 9채를 사들였다. 이 가운데 8채가 얼마 후 등록문화재(문화재거리)로 지정돼 재산가치가 크게 올랐다고 한다. 손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의 여당 측 간사이다. 문화재거리 지정은 문화체육관광위의 피감기관인 문화재청의 권한이다. 드러난 사실관계를 조합하면 손 의원은 피감기관으로부터 문화재 지정 정보를 사전에 확보하고 해당 지역 건물들을 매입해 재산을 늘린 것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야당에선 손 의원이 목포문화지구를 `손혜원랜드'로 만들려 했다고 공격한다.

손 의원은 이 같은 의혹을 전면 부정한다. 사재를 털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목포 구도심을 보존하고 활성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문화재거리 지정은 사전에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어려움을 겪는 친척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도 했다. 쇠락해가는 역사적 건물들을 사들여 보존하려는 선의가 투기로 오해를 받으니 억울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 매입 부동산이 20건이 넘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목포가 지역구로 그에게 우호적이었던 평화당의 박지원 의원마저 “우리 모두가 속았다”며 등을 돌렸다.

앞서 언급한 공자의 사례는 사실이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훈을 남긴다. 때로는 확인된 사실까지도 의심하고 그 이면을 탐문해야 진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공자는 부친의 제사를 언급하는 절묘한 화술로 눈으로 본 사실과는 정반대의 진실을 끌어냈다. 손 의원에게도 공자의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건물 매입으로 재산을 늘린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사재까지 털어서 목포를 지키고자 했다는 또 다른 사실로 반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손 의원은 얼마 전 신재민 기재부 전 사무관에게 독설을 퍼부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신씨는 개인 유튜브를 통해 청와대가 KT&G 사장 교체를 시도하고 기재부에 적자 국채 발행을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손 의원은 자신의 SNS에 `돈을 벌기 위해 양손에 불발탄을 든 사기꾼', `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등의 표현을 써가며 신씨를 격렬하게 비난하며 청와대를 방어했다. 신씨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바꾼 정권에서도 부당한 지시가 반복돼 정권에 경각심을 주고 싶었다”고 폭로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손 의원은 신씨를 공익제보자가 아닌 사기꾼으로 단정하고 모진 언설을 퍼부었다. 돈에 눈이 멀었다고 신 전 사무관을 공박한 손 의원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그 공격을 자신이 받고 있으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손 의원이 묘책을 발휘해 투기꾼 오명을 씻을는지는 모르겠지만, 투기의혹과는 별개로 이번 사태를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그는 툭하면 막말 구설에 올랐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데 인색했고, 구사한 언어에서는 자비도 품격도 보이지 않았다. 쇄도하는 비난과 의혹에 탈당까지 결행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그의 모습에서 `인과응보'비슷한 감상이 드는 이유이다. 손 의원이 이번 사태를 통해 한 가지는 깨닫기 바란다. 누구에게나 존중받고 싶은 인격은 있다는 상식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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